시편 43편: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해설:

이 시편은 앞의 시편 42편과 연결된 시입니다. 마지막 절(5절)은 앞의 시편에서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5절, 11절). 아마도 하나의 시편이 편집 과정에서 둘로 나뉜 것 같습니다.  

새번역은 “비정한 무리”라고 했지만 개역개정은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라고 했습니다(1절). 유다를 멸망시킨 바빌로니아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은 그 나라를 징벌해 달라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달라는 뜻입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을 요새로 삼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심정에 빠집니다(2절). 

3절에서는 기도자의 정서가 달라집니다. 42편에서 본 것처럼 그는 현실에 잠시 눈 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묵상하는 중에 낙심 했던 마음이 회복되고 믿음이 되살아납니다. 묵상을 통해 “주님의 빛과 주님의 진리”(3절)가 그에게 임하자, 그는 상상 속에서 주님의 산으로 가서 주님이 계시는 장막에 들어가 제단 앞에 섭니다. 그곳에서 그는 수금 가락에 맞추어 기뻐 춤추는 상상을 합니다(3-4절). 주님께서 살아계시니 언젠가 유배 생활을 청산하고 몸으로 시온 산에 이르러 성전에서 춤을 추며 기뻐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그는 자신을 다시 격려합니다. 낙심이 될 때 자신의 마음을 향해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고 묻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믿음을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다시 찬양할 때가 올 것입니다(5절). 

묵상:

기도자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4절)이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은 주로 “my exceeding joy” 혹은 “my greatest joy”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반면,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은 “the source of all my joy”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자는 이 말로써 1)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최고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거나 2) “하나님은 내 모든 기쁨의 원천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기도자의 마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기쁨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그분 안에 있을 때 온전한 만족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의 품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충만한 안식과 위로와 사랑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기 전까지 온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분 안에서 완전한 기쁨을 경험 하면 우리는 고갈되지 않는 기쁨에 젖어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성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씁니다. 

유배지에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기도자처럼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 예배와 기도와 묵상을 통해 지성소로 나아갑니다. 그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존재는 흔들림 없는 터전 위에 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사는 것은 기쁨의 샘물을 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5 responses to “시편 43편: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

  1. 충만한 삶의 원천이시며 요새이신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빛과 진리로 오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냉냉한 날씨이지만 주님의 따스한 품에 마음을 고정해 봅니다, 코비드로 어수선한 세상에 주님의 질서로 평온이 되찾아지기를 기도합니다.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오늘하루가 기쁨으로 다스려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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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은 창조자 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어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항상 원하시고 기뻐하심을 믿기에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 합니다. 그러나 세상 재미에 도취되어 잊는 경우가 많으니 성령님께서 항상 나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 만을 찬양하고 경배를 드릴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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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TK Lee Avatar
    Taekhwan TK Lee

    걱정과 근심, 불안과 불평이 많았던 어제 하루를 지내고 난 후에, 오늘 이 새벽에 5절말씀을 읽고나서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제 묵상했던 본문에 두번이나 있었다는 사실도 놀랐습니다.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기 전부터, 어제 새벽에 말씀을 통해서 이미 위로하셨는데,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상황은 변화된 것이 없으나, 내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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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입니다. 매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벽과 불 꺼 주시는 밤이 아니면 하루가 온전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 의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지에 불을 붙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개스 레인지가 켜지려면 점화 라이팅 igniting light 이 불을 당겨 주어야 하는 것을 상상하면 됩니다. 열 한 두살 쯤부터 하나님을 믿었으니까 믿기 전과 후를 선명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만 성인이 되어 믿게 된 교우들 이야기를 들으면 믿기 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확실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믿기 전의 삶은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자기 모습을 보게 된 것을 첫번째로 꼽는 사람도 있고, 왜 사는지 몰라서 허무하던 삶이 예수 믿고 기쁨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오늘 시편을 쓴 사람은 기쁨이며 즐거움이신 하나님 (4절) 앞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주의 빛과 진리가 인도하는 길이라며 빛과 진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길잡이로서 먼저 임해야 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하나님이 길을 내셔야 우리가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이 우리 앞에 길을 내시고 가는 길에 등불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를 처음 믿던 때엔 철이 없어 잘 몰랐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 플러스 섬띵 – 예수 플러스 돈, 예수 플러스 지식, 예수 플러스 명예…예수면 온전하고 완전한데, 예수만 있으면 다 있는 것인데, 굳이 그 뒤에 뭔가를 계속 붙이려고 했던 나를 봅니다. 주님 저의 마음을 채우소서. 주님의 빛으로 제 마음을 채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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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공평하시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 재판장 이시고 세상의 시험과
    유혹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로
    변호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믿습니다.비정한 무리들이 끓임없이 고발
    하여도 이웃과함께 임마누엘 성삼위 하나님께 찬양 히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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