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2편: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해설:

시편의 편집자는 표제에서 이 시편이 쓰여진 상황을 밝힙니다. 도엑은 사울 왕의 부관으로서 잔인무도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21-22장). 사울의 살해 위협을 피해 다윗이 도피해 다닐 때, 도엑은 잠시 동안 다윗을 받아 주었던 아히멜렉 제사장을 사울에게 고발하여 여든 다섯명의 제사장과 그들이 살던 마을 주민 모두를 살해했습니다. 다윗은 권력욕에 눈 멀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도엑을 생각하며 이 시편을 썼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경고이며, 악한 사람에 의해 위협 당하고 있는 의인들에 대한 격려입니다.

다윗은 먼저 악한 일을 음모하고 실행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랑삼아 떠드는 행동에 대해 책망합니다(1절). 그 사람의 혀는 “날카로운 칼날처럼”(2절) 사람들을 해칠 일만 생각합니다. 그는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더 즐기고 옳은 말보다 거짓말을 더 사랑”(3절)합니다. “남을 해치는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지 좋아”(4절)합니다. 그는 속속들이 죄악에 물들어 있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죄악에 우리 자신을 내어 주면 결국 이렇게 회복할 수 없이 물들게 됩니다.

이어서 다윗은 그 악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악한 자들이 발호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무력한 것 같고 무관심한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팔을 들어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그분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그분의 참으심이 지연될수록 심판은 더욱 강력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도엑을 막을 자가 없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람 사는 땅에서 영원히 뿌리 뽑아 버리실 것”(5절)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며 때로 악인들에게 무고하게 고난을 당하는 의인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지 않고, 제가 가진 많은 재산만을 의지하며, 자기의 폭력으로 힘을 쓰던”(7절) 사람의 최후가 어떤지를 확인합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자신의 선 자리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난 받는 상황이 길어지더라도 자신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만을 의지”(8절)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잎이 무성한 올리브 나무처럼”(8절) 될 것입니다. 올리브 나무의 평균 수명은 5백 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사람은 영원히 안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그는 주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며 홀로 그리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다짐합니다(9절).

묵상:

오늘의 시편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경고가 되는 이유는 우리도 언제든지 죄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인과 악마의 가능성이 공존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인의 모습으로 잘 빚어지던 사람도 한 순간에 죄악에 마음의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방비를 게을리 하고 죄악에 우리 자신을 내어 주면, 나중에는 회복할 수 없이 깊이 물들어 버립니다. 모든 지체를 무기로 삼아 악을 행합니다. 그렇게 죄악을 일삼고 살아도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즉각적으로 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것을 하나님의 부재 혹은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결국 심판의 팔을 드십니다. 그 때면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립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감사히 여기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 시편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의롭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에 불을 지펴 주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살기 위해 힘쓸 때 자주 시험과 유혹과 환난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죄를 멀리하고 희생과 헌신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 모두 무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회의가 올 때 낙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헤세드)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성한 올리브 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시편 52편: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1. 주님! 날마다 말씀으로 나의 영혼은 씻어 주시니 감사 합니다. 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자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살아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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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소망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고, 그 하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데, 때로는 거하는 것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계획 안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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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대 사회에는 도엑처럼 권력을 휘두르며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일은 한국과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반 시민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 외에는 더 자세히 알 수가 없어서 법의 판결이 공의로운지 아닌지 제대로 따질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권력과 언론을 인격체로 표현하자면, 그 둘이 양심적이고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들이면 사회가 덜 혼탁하지만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이끄는 사회는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세상이 됩니다. 트럼프만 자리에서 내려오면 다 좋아질 줄로 알았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산안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하원의 권력의 현주소는 무력감을 안길 수 밖에 없습니다. 코비드 백신이 개발되기만 하면 다 좋아질 줄 알았던 희망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는 것을 보았듯이 우리의 기대는 너무 쉽게 실망감으로 배신감으로 바뀝니다. 노래가 시작하면서 “힘센 자여,” 라고 시인은 지목하여 부릅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권력을 가진 사람만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권력은 죄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동산에서 지하철역이 가까우면 (교통이 좋으면, 학군이 좋으면 등등) 프리미엄을 붙이듯이 권력의 자리에는 크고 작은 편리와 장점이 따라 붙습니다. 이런 것에 길들여질수록 죄에 발을 담그기가 더욱 쉬워집니다. 나는 그저 미미한 시민인데, 나는 그냥 소시민이요 황혼의 할머니인데…하다가도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 같습니다” 구절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납니다. 하나님의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이기에 좋은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묵상하며 헛된 욕심, 끈질긴 교만을 가지치기 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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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는 직장에서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이 크나큰 광풍이 되어
    온 공동체가 어지럽게 흔들립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공동체임을 기억하고
    주님께 먼저 간구 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잊지않고 남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의 사랑을 마음
    에품고 만나는 모든 믿음의 가족에게 용기와 격려를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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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말의 폭력은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 저희의 입을 단속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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