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대표적인 ‘저주시편’입니다. “통치자들”(1절)은 “힘 있는 자들” 혹은 “권세 있는 자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을 정의를 위해 공정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그들은 마음으로는 불의를 꾸미고 손으로는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2절). 그들은 마치 모태로부터 죄에 물든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것마다 죄요 행하는 것마다 악입니다(3-4절). 속속들이 악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거침 없는 악행으로 인해 선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억울하고 무고한 희생을 견뎌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악행을 제재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구합니다. 다윗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호소 하면서 악담과 저주로써 분노를 쏟아 놓습니다(6-9절). 평상심으로 이 기도를 읽으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나?’ 싶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악을 만나 그로 인해 억울한 고난을 당해 본 사람이라면 이 기도를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으로 볼 때 그렇게 저주를 퍼붓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멀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난을 당하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기도를 드렸을 법합니다. 가까이는 지독하게 악의적인 사람을 만나 그로 인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당할 때면 이런 기도를 드릴 법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저주를 쏟아내며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악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롭게 살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10절)라는 기도는 충격적으로 들립니다. 그만큼 그들의 악이 심하고 다윗이 경험한 고통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과연, 의인이 열매를 맺는구나! 과연, 이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11절) 하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묵상:
가장 좋은 기도는 우리의 정서에 정직한 기도입니다. 내면에 미움과 분노가 들끓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까지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의심과 회의가 있을 때도, 분노와 앙심이 들끓을 때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 놓을 때 의심과 회의는 녹아지고 분노와 앙심은 잦아 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얻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손으로 앙갚음을 하는 것은 잠시 만족을 줄지 모르나 두고두고 아픔이 됩니다. 또한 그것은 더 큰 악행을 불러 옵니다. 내 손을 매듭을 풀려 하다 보면 더 단단하고 더 많은 매듭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는 것을 볼 때면 마음 깊은 감사와 안식을 얻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롬 12:19-21).
하나님의 손만이 모든 매듭진 것을 풀어내십니다. 우리는 묵묵히 견디고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할 수 있다면, 나를 괴롭게 하는 이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리며 기다립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힘쓰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힘겨운 일이지만, 그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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