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표제는 이 기도의 배경으로서 사무엘상 19장 11-17절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악의적인 사람들의 모함과 공격으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읽고 묵상하기에 알맞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묘사와 구원에 대한 간구를 섞어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1-2절). 강한 자들이 자신을 해하려 하는데, 자신에게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3절). 그러니 하나님께 “깨어나 살피시고, 나를 도와주십시오”(4절)라고 호소합니다. 주님은 “모든 나라를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 분”(5절)이시기에 사람도 차별 없이 심판하십니다.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 분 앞에 선다면 다윗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밤에 거리를 쏘다니며 아무에게나 짖어대고 물어뜯는 개들과 같습니다(6, 14-15절).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7절).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8절). 보고 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십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합니다(9절). 하나님에게는 “한결같은 사랑”(10절)이 있기에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이릅니다. 그 확신에 서서 그는 “내 백성이 그들을 잊을까 두려우니, 그들을 아주 말살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11절)라고 기도합니다. 다만 “그들을 흔드시고, 그들을 낮추어”(11절)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백성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속속들이 죄악에 오염되어 있기에 심판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12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스리고 계심을 땅 끝까지 알게”(13절)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후,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과 헌신을 다짐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이며 “나의 피난처”(16-17절)이시기에 자신은 아침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찬양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악한 이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묵상:
바른 기도는 기도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결단과 헌신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에 마음을 담았다면 그가 올리는 모든 말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이요 다짐이 됩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면, “제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겠습니다”라는 뜻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면, “제가 주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 했다면, “저는 그들처럼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결단을 한 셈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새로운 결단 없이 기도를 올렸다면, 그 기도는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잔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실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결단과 헌신이 따르지 않는 공허한 기도에 만족합니다. 그렇게라도 기도하는 것이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 기도는 기도자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다윗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새롭게 결단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기도는 새로운 다짐과 결단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면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 감고 드리는 기도는 눈을 뜨고 나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고, 골방에서의 기도는 골방문을 열고 나온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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