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9편: 기도는 결단이다

해설:

표제는 이 기도의 배경으로서 사무엘상 19장 11-17절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악의적인 사람들의 모함과 공격으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읽고 묵상하기에 알맞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묘사와 구원에 대한 간구를 섞어서 기도를 올립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1-2절). 강한 자들이 자신을 해하려 하는데, 자신에게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3절). 그러니 하나님께 “깨어나 살피시고, 나를 도와주십시오”(4절)라고 호소합니다. 주님은 “모든 나라를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 분”(5절)이시기에 사람도 차별 없이 심판하십니다.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 분 앞에 선다면 다윗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밤에 거리를 쏘다니며 아무에게나 짖어대고 물어뜯는 개들과 같습니다(6, 14-15절).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7절).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8절). 보고 계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바로잡으십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합니다(9절). 하나님에게는 “한결같은 사랑”(10절)이 있기에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이릅니다. 그 확신에 서서 그는 “내 백성이 그들을 잊을까 두려우니, 그들을 아주 말살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11절)라고 기도합니다. 다만 “그들을 흔드시고, 그들을 낮추어”(11절)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백성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속속들이 죄악에 오염되어 있기에 심판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12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스리고 계심을 땅 끝까지 알게”(13절)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후,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과 헌신을 다짐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이며 “나의 피난처”(16-17절)이시기에 자신은 아침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찬양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악한 이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묵상:

바른 기도는 기도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결단과 헌신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에 마음을 담았다면 그가 올리는 모든 말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이요 다짐이 됩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면, “제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겠습니다”라는 뜻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 했다면, “제가 주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 했다면, “저는 그들처럼 살지 않겠습니다”라고 결단을 한 셈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새로운 결단 없이 기도를 올렸다면, 그 기도는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잔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실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결단과 헌신이 따르지 않는 공허한 기도에 만족합니다. 그렇게라도 기도하는 것이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 기도는 기도자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다윗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새롭게 결단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기도는 새로운 다짐과 결단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면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 감고 드리는 기도는 눈을 뜨고 나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고, 골방에서의 기도는 골방문을 열고 나온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6 responses to “시편 59편: 기도는 결단이다”

  1.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입니다, 눈을 감고 오늘 하루의 일과를 생각하며 행하여지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 삐뚤어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로 끝나지 않고 이 기도가 하루의 시작이 되게하시고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오늘 하루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에 임하여지기를 기도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내가 의지하고 믿을 분이 오직 주님 만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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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 주를 시작하는 이 새벽, 말씀과 기도로써 하루를 시작합니다. 제 영혼을 맑게 밝혀주소서. 세상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아이덴터티를 품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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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 할 수 있는 이 아침을 주시니 감사 감사 합니다. 다윗의 고백과 다짐이 나의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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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기도의 핵심은 변화이고 행함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기도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인도하심을 구하며 나의 할일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을 통해서 드려지는 고백과 기도가 성경책을 덮는 순간, 내 삶에서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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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도의 자리를 떠나면서 기도가 시작되고, 예배당을 나오면서 예배 드리듯 사는 삶이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입만 살아있는” 기독교인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사람을 표현하면서 “예배 드리는건 엄청 좋아하면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한테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 마음이 상했다고 하던 끝에 나온 말입니다. 세상이 기독교인을 조롱하는 것과 핍박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게에서 손님을 맞다 보면 여러 사람을 봅니다. 가게에 있다 가는 그 짧은 시간에 그의 ‘인상’이 만들어지고 남습니다. 은연 중에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섞일 수 있겠지만 가게를 찾은 손님과 가게 주인이라는 설정 자체가 일정한 틀이 되기 때문에 손님의 인상은 거의 늘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집니다.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자기 집에서도 저럴까? 무인 판매대는 이래서 나온걸까? 생각하게 만드는 손님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표식을 하고 살지 않습니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해서도, 함부로 대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라고, 성벽이시며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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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도가 몰염치한 기도 이었습니다. 기도 생활보다
    삶으로사는 생활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날의 간구에 응답 받기
    전에 먼저 더 낮아지고 이름도 빛도없이 속해있는 모든공동체의 밑 거름
    이 되라고 주님께서 주시는 오늘의 분부를 지키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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