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2편: 하나님 앞에 잠잠히

해설:

이 시편도 61편처럼 다윗이 어려운 상황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3절과 4절에 그가 처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 퍼뜨리면서 그를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이 “기울어 가는 담” 혹은 “무너지는 돌담”(3절)과 같은 신세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그들에게 대항하여 응징할 힘이 그에게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실 것을 믿고 잠잠히 거합니다.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절, 5절). 그는 거듭하여 하나님만이 그의 반석이시며 구원이시고 요새이심을 고백합니다(2절, 6-7절). 그는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합니다. 그는 또한 이 시편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마음을 쏟아 놓으라고 권고합니다(8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인간이 가진 힘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손길을 “잠잠히”(1절, 5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신분도, 권력도, 재물도 “속임수”(5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것이 대단해 보이는데 실은 덧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지혜에 비하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입김보다 가볍습니다(9절). 그래서 다윗은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10절)고 결론 짓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해 보았고 가져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말에 더욱 무게가 더해지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두 가지 진실을 확인합니다. 첫째는 “권세는 하나님의 것”(11절)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자신에게 권세가 주어졌을 때 하나님께 겸손히 고개 숙일 수 있고, 권세를 휘두르는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12절)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은 히브리어 ‘헤세드’의 번역입니다. 헬라어로는 ‘아가페’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변함 없는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없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묵상:

다윗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그분을 바라 보았습니다(1절).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사실을 자꾸 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정의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물질적인 조건이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9절)을 망각합니다. 권력과 부와 명성을 얻어야만 안정을 얻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그런 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줄을 대서라도 안심 하려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찢기고 불안과 두려움이 찢겨진 마음을 장악합니다. 다윗도 자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곤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윗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다고 하여 곧바로 마음이 안정되고 믿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의 활동은 멈춰 있다 해도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은 물 속의 부유물처럼 떠다닙니다. 그래서 1절에서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린다”고 한 다윗은 5절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데, 마음은 아직 안정을 찾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렇게 기도 하면서 한참 동안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은 다음에야 믿음을 회복하고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묵상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성별하여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주한 시간 중에 짬을 내어 잠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하루에 한 번은 충분한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이 마음으로 믿어지고 찢겨졌던 마음이 통합되어 든든한 평안과 담대함이 들어찰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묵상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줍니다. 

6 responses to “시편 62편: 하나님 앞에 잠잠히”

  1. 손과 머리를 멈추고 잠잠히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묵상이 매 아침의 일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분주한 하루의 시작에 앞서 차분한 마음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 권세와 한결같은 사랑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기다리며 그 안에서 삶의 진실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구원의 요새시며 반석이신 주님안에서 주님을 향한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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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 오늘도 말씀을 묵상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 합니다. 말씀을 묵상으로 끝나는 제가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말씀을 번역해 내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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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머리에서 마음으로까지 오는 거리가 상당히 깁니다. 다윗의 고백들이 내 머리에서 Information (정보) 으로 들어왔지만, 내 삶 까지 Transformation (변화) 되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그리하여 내 삶과 인격이 하나님 안에서 Formation (형성)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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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전해집니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사유하며 살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반성하고 캐묻고 따지며 살지 않는다면 진정 산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선물입니다. 크리스찬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성찰의 그물을 좀 더 촘촘하게 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따지지 말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습니다. 따지거나 질문하면 피곤하기만 하다며 생각해주듯 말립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인데…다윗은 사람들 앞에 서는 ‘피곤’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안식으로 푼 사람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은 생명 – 살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는’ 시간이고, 명령에 순종하기로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삶이 가치있는지 없는지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가치가 다르기에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분께 나의 마음을 다 털어놓는 (8절) 시간만큼은 가치있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바위, 성벽,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종일토록 생각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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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직 구원이 하나님 에게만 있으니 주님께 소망을 둔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자주 세상의 부귀영화에 마음을 두는 가련한 신세입니다.
    온전히 전능과 사랑의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세상의 가치관을 배설물로 여기고 잠잠히 주님 만을
    기리고 평강을 누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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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에 힘쓴 성경의 옛날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아무것도 바쁠일이 없었을 것이라 상상하며, 인터넷에, 회사일에, 전화에, 집안일에, 라이드에 현대인의 삶이 너무 바쁘기때문에 기도의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계의 편리함을 누리며 스스로 여유시간을 만들수있는 선택권이 있던 시절이 많이 있었을까요? 사냥과 식량에서 가족보호, 옷만드는것까지 매순간을 걱정하며 쉴수 없었던 옛날 사람들이 과연 시간이 남아서 기도를 했을까요. 시간이 없다고 핑계만드는 제자신을 반성합니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시간은 많은데 기도할 시간이 없었던 겁니다. 부족한 저를 늘 깨우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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