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성육하신 로고스에 대한 묵상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시작한 사도 요한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처럼 먼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 유대인들 사이에는 세례 요한이 메시아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전해지자 몇 사람을 요한에게 파견하여 진상을 알아 보게 합니다(19절). 세례 요한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답합니다(20절).
그러자 파견된 사람들은 재차 묻습니다. “그러면 엘리야요?”(21절)라고 질문한 이유는 죽지 않고 들림 받은 예언자 엘리야가 메시아 보다 먼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이 엘리야였다고 하시는데(마 11:14; 17:12), 세례 요한 자신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라는 질문은 신명기 18장 18절에 예언된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파견된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22절)라고 묻자 그는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은 단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소리일 뿐이라고 답합니다(23절). 그러자 그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24-25절). 요한은 그 질문에 직답하는 대신, 이제 곧 나타날 메시아에 대해 예언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26절)라는 말을 보면, 이 때 예수님은 세례 받기 위해 무리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답합니다(27절). 손님의 신발 끈을 풀어 주는 것은 당시에 종이 하던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일이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첨언합니다(28절). 여기서 언급된 베다니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 머무셨던 베다니와는 다른 곳입니다.
묵상:
주후 1세기에 많은 저서를 남긴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에 스스로 메시아라고 자처하면서 군중을 선동하던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뜨거웠다는 뜻입니다. 경건한 유대 여인들 중에는 임신할 경우 ‘혹시 내 아이가 메시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감을 가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면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셨다는 망상에 젖어 그렇게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로마 군대는 잔인하게 진압하곤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대표단을 파견하여 조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그에게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미연에 화근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대표단의 질문에 대해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도, 엘리아도,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당시에 유대 백성이 그에게 보였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여준 환호와 열광에 속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것을 이용하여 인기를 얻고 권력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무리가 자신에게 돌리는 영광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에 충실할 뿐이었습니다.
대표단이 세례 요한에게 던졌던 질문 즉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이 이 아침 나를 깨웁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까? 나를 나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나 아닌 어떤 것을 탐하고 나 아닌 어떤 존재가 되기를 꿈꾸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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