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혼주는 예수님의 친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집 주방에서 일을 거듭니다(1-2절). 당시 혼인 잔치는 일 주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잔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포도주였습니다. 음료수의 역할뿐 아니라 잔치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지난 후, 포도주가 동이 납니다. 혼주로서는 위기를 맞은 겁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을 것이고, 잔치는 파장을 맞이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3절)고 상황을 알립니다. 예수님에게 어찌 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잔치집의 위기 상황을 알리기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4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부를 때 “여자여”라고 부르곤 하십니다(4:21; 8:10; 19:26; 20:13).
그분은 잔치집의 위기 상황에 개입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때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7:30; 8:20; 12:23, 27; 13:1; 16:32; 17:1). 그 때는 예수께서 정체를 드러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4절)라는 말씀은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마리아는 아들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무슨 일이든 할 거라고 믿고 일꾼들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당부합니다(5절).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때가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은밀한 청을 마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정결례를 위해 준비한 물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6절).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으라고 이릅니다(7절). 여섯 항아리에 물이 가득 담기자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그 물을 떠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라고 하십니다(8절). 잔치 맡은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떠다 준 물을 마시는데, 그동안 맛보지 못한 질 좋은 포도주였습니다(9절). 그는 신랑을 불러서,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10절). 신랑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개입으로 파장 날 뻔했던 잔치는 계속 됩니다. 전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넉넉하게 확보 되었으니 잔치는 더욱 흥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데, 물이 없습니다. 늦게서야 잔치집을 찾은 사람들은 손을 씻을 수가 없어서 난감 했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발생한 위기는 정결례를 위한 물이 떨어지는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이 예수님이 행한 첫 번째 표징이라고 설명합니다(11절). 그는 예수님이 행한 이적을 ‘세메이온'( “표적” 혹은 “표징”)이라고 부르는데, 요한복음 전체에는 열덟 개의 표징이 나옵니다(2:1-11; 4:43-54; 5:1-15; 6:1-14; 6:16-21; 9:1-12; 11:1-44; 20:1-31). 이 사건들을 “이적”이 아니라 “표징”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표징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 줍니다. 그 영광을 보는 사람들은 그분을 믿게 됩니다.
묵상: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징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줍니다. 그 하나는 파장 날 뻔했던 잔치를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메시아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아직 메시아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때가 아님을 아셨지만, 이 표징을 통해 당신이 메시아로 오신 분임을 은밀하게 알리셨습니다. 그 의미를 알아챈 사람들은 그와 함께 있었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잔치 즉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통해 기쁨이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정결례를 위해 준비된 물 항아리를 포도주 항아리로 바꾸신 데서 드러납니다. 신실한 유대교인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부정 탄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맨손으로 음식을 먹었는데, 바깥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부정한 것을 만졌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물 항아리의 물을 모두 포도주로 바꾸심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정결례를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로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보다 씻을 물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정결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막 7:15)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종교적 전통들(조상의 유전)을 철폐하셨습니다. 그 전통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을 모셔 들인다는 것은 관습과 전통에 얽매어 생명력과 기쁨을 잃어버린 삶에 잔치집 같은 생명력과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활짝 꽃피게 하는 자유 그리고 마음 설레는 기쁨이 내 안에 있는지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