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수님은 당신에 관한 소문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을 아시고 유대 광야에서의 세례 사역을 접고 갈릴리로 돌아 가십니다(1-3절).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는 유대인들과 같은 민족이었는데,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북왕국이 패망한 이후에 혼혈정책에 의해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시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단강 주변의 광야길을 사용하여 사마리아를 우회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차별의식을 반대 하셨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4절).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5절). 그곳에 야곱이 판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우물에서 쉬고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갑니다(8절). 때는 “오정쯤”(6절) 되었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한낮은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옵니다.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러 온 것입니다. 다른 여인들이 물을 길러 오는 시간을 피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7절).
그 여인이 물을 길려 하자 예수님이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은 유대 남성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에 깜짝 놀랍니다. 유대 남성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9절). 그러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정한 생수가 당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10절). 정말 물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11-12절).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3-14절). 여인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15절).
그러자 예수님이 화제를 돌려 그 여인에게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십니다(16절). 그 여인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그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금은 결혼도 하지 않고 여섯 번째 남자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17-18절). 그 여인은 남자들에게 거듭 버림 받았지만 누구에겐가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여인은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예수님이 알고 있음을 보고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19절). 그리고는 영적인 질문을 꺼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 드려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유대 사람들은 시온 산에 있는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누구의 말이 맞느냐고 묻습니다(20절). 예수님은 새로운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지금이 그 때라고 답하십니다(21-23절). 그 때가 오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24절)고 하십니다. “영과 진리로”라는 말은 “진리의 성령으로”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장소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의 영과 함께 하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예배의 때에 대해 말씀 하시자 그 여인은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말씀인 줄 깨닫습니다(25절).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그 메시아라고 답하십니다(26절).
묵상: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기독교 역사 상 가장 오래, 가장 심하게 오해 받아 온 사람입니다. 그 여인이 여섯 남자를 전전한 이유가 그의 채울 수 없는 성욕 때문이라고 해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덟 번 결혼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유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남성 중심의 유대 문화에서는 여인이 자기 마음대로 남편을 바꿔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이용 당하고 버림 받기를 거듭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겐가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폭행 당하는 여성들이 그것에 길들여져 계속 그런 남자들을 만나고 유린 당하는 예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여인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문제를 아셨습니다. 그 여인의 채워지지 않는 내적 갈증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걸었고, 다시는 목 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생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거듭 딴 소리를 하는데,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인의 문제를 직접 공략하십니다. 그 여인의 문제는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여인의 예배는 그 공간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로는 내면의 갈증이 채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 여인은 마실 물을 길러 나왔지만 정말 그에게 필요했던 물은 내적 갈증을 해소해 줄 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고 그 해결책도 발견했습니다. 내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그는 하나님께 “참되게”(23절) 예배해야 했습니다.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 즉 진리의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존재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그 뿌리를 캐 들어가 보면 결국 예배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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