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16-30절: 구원의 현재와 미래

해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행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합니다(16절).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17절)고 답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 하셨다는 말은 우주를 저절로 돌아가게 해 놓고 손을 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창주주 하나님은 안식의 상태에서 계속 우주를 운행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일을 멈추는 안식”은 인간에게만 필요합니다. 안식일에도 하나님은 계속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당신도 안식일에 일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립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 하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8절). 유대인들의 신앙으로는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친 김에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부연하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인 자신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같다고 하십니다(19-20절).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것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에 자신이 행할 수 있었습니다(21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을 당신처럼 섬기게 하도록 심판하는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22-23절). 따라서 한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고 또한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24절)고 단언하십니다. 죽고 나서가 아니라 믿는 순간 그 생명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2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살아 있어도 실은 죽은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살 것이다”는 참된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아들을 믿는 사람은 그 즉시로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갑니다(27절).

하지만 이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28절)이 모두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옵니다. 예수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시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때를 말합니다. 그 때가 되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29절)고 하십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하나님에게 돌아와 그분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악한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심판은 정당합니다(30절).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을 향해 ‘아바’라고 불렀습니다. 현존하는 문헌 증거로 볼 때 예수님 이전에는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바’라는 호칭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독점적인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랑의 관계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별개이지만 또한 하나이듯 예수님은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 계십니다. 그와 같은 인격적 합일 상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드러나셨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언제나 작가와의 관계에 의해 그 가치와 운명이 결정됩니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자연 상태를 두고 “죽었다”고 표현하십니다. 육신적인 생명 만으로는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생명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진실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다시 생명의 근원에 연결되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미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시는 날 모든 죽은 사람들은 다시 일으킴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을 모두 믿어야 온전한 신앙입니다. ‘현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구원’은 영으로 일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때 완성됩니다. ‘현재의 구원’은 전채 요리와 같고 ‘미래의 구원’은 메인 요리와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즐기면서 장차 맞게 될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기대합니다.   

5 responses to “요한복음 5장 16-30절: 구원의 현재와 미래”

  1. 하나님이면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겸손함과 자비심으로 지상에 오셔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해 주시면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눈의 초점이 예수님에 항상 고정된 삶으로 은혜받기를 기원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에 자비를 베프시어 더 이상 희생이 따르지 않게 이끌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온이 하루를 지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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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은 칼날 같은 날 선 혀를 가진 유대인들 앞에서도 거침 없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알리시는 담대 함으로 유대인들로부터 죽이고 싶은 미움을 받으심은 진정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 마찬가지로 죄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담대 하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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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항상 사랑과 은혜로 일 하시는 주님의 도움이 가 되고 싶습니다. 나이를 핑계로 뒷전에서 보고만 있지않고 젊은이들의 헌신에 조금 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원합니다. 죽엄 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귀한사역에 초점을 마추고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주님앞에 섰을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삶을 이웃과 함께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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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를 영원히 산다, 죽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면 생명, 살아있음, 인생을 보는 눈이 다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호흡이 안되는 사람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준다거나, 심정지가 온 사람을 전기 자극으로 되살려 심장이 뛰게 하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것 이상입니다. 38년을 걷지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은 심장이나 뇌, 폐, 혹은 다른 장기에 손상이 와서 생명에 지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보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쳐 주심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현재의 구원입니다. 얼마 후에 성전 뜰에서 그를 만난 예수님은 이제 건강해졌으니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미래에 맞이할 구원의 때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 즉 법의 눈으로 보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도 되지만 하나님을 염두에 둔 사람으로서 구별해야 하는 자기관리를 강조하신 것이라고 듣습니다. 영생을 얻었으니 영생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일하시기에 “죽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25절)”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듣는 대로만 심판을 하신다고 말하십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애쓴다고 하십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이 영생을 사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매일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살기를, 생명력 있는 나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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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본문을 보니 예수를 비난하는 유대인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제 일을 충실히 하지 않은것을 반성합니다. 제 나이에 맞는 체면을 자꾸 신경쓰게되고 더 젊은 성도들에게 귀찮은 일을 미루었습니다. 성도들과 친하지 않다는 핑계도 댔습니다. 하지만 모든 편견과 관습을 뛰어넘어 자기를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도우신 예수님을 생각할때 세상적인 시각에만 꽁꽁 갇혀있는 저를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모든 성도가 환영받고 관심받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교회에 친구없는 분들, 주목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다른 성도들과 벽을 허물겠습니다. 먼발치에서 팔짱끼고 냉정한 시선으로 방관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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