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15절: 진정한 유월절

해설:

공생애를 시작한 후 예수님은 두 번째 유월절을 맞으십니다(4절, 첫 번째 유월절은 2장 13절). 그 즈음에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오르십니다. 그분이 행하신 표적 때문에 많은 무리가 그분에게 모여 듭니다. 날이 저물어 갈 때,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고 물으십니다. 그분에게는 계획이 있었지만 빌립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고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6절). 그러자 빌립은 그 무리를 다 먹이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도 부족하다고 대답합니다(7절). 한 데나리온은 성인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백 데나리온은 꽤 많은 돈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큰 돈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곁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 보여 드립니다. 하지만 안드레 역시 그것 가지고는 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8-9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앉게 하라고 명하신 후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곳에는 남자 만도 오천 명쯤 모여 있었습니다(10절). 그 적은 음식을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나누어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11절).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후에 예수님은 남은 음식을 모으라고 하십니다(12절). 그대로 했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찹니다(13절).

그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14절) 즉 메시아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이 믿음은 신명기 18장 18절(“나는 그들의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는,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일러줄 것이다”)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게 한 모세를 생각나게 했고,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예언이 생각나게 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삽시간에 군중 사이에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산 속으로 몸을 피하십니다(15절). 지금은 아직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하실 일과 무리가 메시아에게 바라는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묵상: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한 후, 제사장 백성으로 선택 받은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들에 의해 지배 당했습니다. 5백 년도 넘는 세월 동안 변변한 독립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외세의 통치 하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아야 했고, 본토에 남은 사람들도 자신의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듯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삶을 지켜 준 힘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외세의 압제를 끝내고 영광스러운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 것이라는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은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소망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표적을 보고 무리는 그분을 왕으로 옹립 하려 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일이 마치 광야에서 모세가 행한 일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일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를 택해 이런 표적을 행하심으로 당신이 과연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치적 해방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세보다 크신 분”(1:17)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지상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정치적인 해방이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이루실 진정한 유월절, 영원한 유월절입니다. 

그것은 로마 군대와 전쟁을 벌여 이룰 일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룰 일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높아지고 권력을 잡고 지상 왕국을 이루는 것은 그분에게 관심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때가 오기까지 기다리십니다. 

6 responses to “요한복음 6장 1-15절: 진정한 유월절”

  1. 지금도 저희들이 조국 통일과 우크라이나를 지켜주시고 세상의 평화를 이루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이룰실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기를 지는 믿음을 원합니다.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주님을 간절히 그리고 인내로 기다리는 소망으로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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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5 병 2어의 기적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의 예언에 나오는 왕이 바로 이분인가? 하고 왕으로 모시려 할때 자기 때가 아직 아님을 아신 예수님이 혼자 산으로 물러가시는 예수님의 겸허하심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 거짓 선지자들의 망령된 술수로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이 때에 내 눈과 귀를 예수님의 주파수에 맞추어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삶의 진리를 묵상해 봅니다, 이적보다는 말씀 속에 나타나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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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순절을 맞이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다시 한번 새롭게 기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주님! 감사 합니다. 어린이가 무슨 죄가 있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힘없이 죽어가야 하나요? 주님! 부정과 부패를 감추기 위해, 권력의 탐욕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지도자들을 묶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전쟁을 멈춰 주십시오. 또한 나의 조국의 지도자를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자를 세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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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제 삶과 같습니다. 저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나만의 계획과 생각만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계획이라는 박스에 넣으려고 했음을 회개합니다. 크시고 높으신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을 나의 협소한 생각과 계획으로만 행해주시는 분으로 하려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나의 생각과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해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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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유월절 디베라 호수가의 이적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말씀입니다. 여러번 읽고, 설교로 들어도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 이야기의 하나로 남아 있을 뿐 나의 주관적인 (?) 해석이나 경험과 만나져서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전과 다른 묵상의 길을 갑니다. “때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무렵 (4절)” 이었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어떤 시간, 때, 모멘트, 필요…등등에 마음을 모아봅니다. 모여든 무리가 배가 고프다거나, 주섬주섬 먹을 것을 꺼내 놓는다거나, 혹은 제자를 붙잡고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거나 하는 ‘밥 때’의 움직임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데 생각이 닿았습니다. 실제로 배가 고파 뭔가를 먹는 일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 더 상상해보면, 무리는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서 배고픔을 못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먹는 일을 잊고 있을 만큼 예수님의 시간에 푹 빠져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은 오천 명이 먹는 그림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린 그림입니다. 예수님의 의미, 목적, 능력, 때..를 우리에게 전하는 장면입니다. 유월절이라는 명절 자체가 모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하면 광야가 떠오릅니다. 광야를 생각하면 만나도 생각납니다. 매일 어김없이 먹을 양식을 주신 하나님이 디베라 호수에서 무리를 먹이시는 일은 우리에겐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늘상 있는 일, 늘상 하시는 일입니다. 먹고 남은 조각들이 열 두 광주리가 되었다는 기록은 추신이나 사족처럼 붙은 말 같습니다. 당연히 먹고 남지요! 풍성하신 은혜, 절대 모자라지 않는 은혜, 얼마든지 또 먹일 수 있는 넉넉한 은혜를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시간대에 있든지 주님의 자비가 함께 한다는 깨달음이 우리를 지탱해주고 먹을 양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러시아 사람들, 관심에서 밀려난 곳에서 소리없이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 우리들 모두의 양식이요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를 먹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시간을 사는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중심이 되는 사순절을 보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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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빌립과 안드레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잘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이 문제 해결해 주실것을 믿습니다’ 라는 대답을 기대하셨습니다. 여기서 분주한 마르다의 모습이 또한 겹쳐 보입니다. 우리는 좁은 사고의 틀안에서 계획하고 걱정하고 예단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시는 자비로운 예수는 이런 모습때문에 우리에게 화를 내시지는 않겠지만 그저 안타까와 하시겠지요. 아이들은 어른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일에 걱정을 합니다. 어른이 해결할수 있는 것을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끙끙대며 걱정하는 그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어른에게 부탁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빨리 다시 행복하길 바라는것이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의 마음이지요. 우리는 세상일을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내 계획으로 전쟁을 빨리 끝낼수 있다고, 사람들이 겁먹고 굴복할 거라고, 내 계산으로는 큰 이익을 볼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내 자만과 달리 세상에는 내 힘으로 할수 있는것도 예상대로 되는것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 제 문제들 다 내려놓고 전적으로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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