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대인들이 떠나가자 제자들 중 여럿이 “이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 들을 수 있겠는가?”(60절) 하고 불평합니다. 여기서의 “제자들”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이유는 그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61절).
예수님은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63절). 예수님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것에 대해 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그분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먹고 그분의 영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이 내 안에 거하고 그분이 나를 통해 일 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고, 그 생명은 영원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그 비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느냐?”(62절)고 물으십니다. 당신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그들의 영적 이해력으로는 부활과 승천을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63절)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눈이 열려야만 영원한 생명을 알고 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중에는 영영 믿음에 들지 못할 사람들도 있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64절).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인간적인 고집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빛이 임할 때 빛을 피하여 어둠 속으로 숨어 들듯,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도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의 믿음 대로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셨던(2:25)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자신을 넘겨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65절)고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예수님 곁을 떠났고 다시는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66절). 예수님은 곁에 남아 있는 열 두 제자에게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고 물으십니다(67절).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68-69절)라고 답합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영적인 세계를 향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대답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설익은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그들 중 하나가 악마라고 말씀하십니다(70절). 당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71절).
묵상:
“너희까지도 떠나가려 하느냐?”(67절)는 예수님의 질문이 마음에 울립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 이유는 그들에게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살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육신과 물질을 전부로 알고 살았고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않았던” 것입니다.
연못 안에 사는 애벌레들은 나비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물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나비가 된 애벌레가 다시 애벌레가 되어 물 속에 들어가 다른 애벌레들에게 나비의 세계를 전한다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 세계에 갇혀 그것만을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혹은 영적인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고, 그 차원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안다 해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영적 세계를 인정하면 육적인 세계 안에서 즐기던 일들을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물질주의 세계관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 혹은 영적 차원을 인정하기도 어렵고 그 세계를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부활 이후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혹은 영적 차원을 인정하는 출발점입니다. 부활은 영적 세계 혹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 나라를 믿고 그 나라를 경험하며 그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체험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영적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알아갈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숨이 다할 때까지 주님 곁에 머무를 것입니다. 아니, 주님 안에 머물러 살 것입니다(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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