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31-47절: 참된 자유함에 이르는 길

해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이들이 있었습니다(30절).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3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물러 있다”라는 개념은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다시 강조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32절). 그분의 말씀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분에 대한 믿음은 유실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으면 그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속박된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뜻을 알아 차리고 자신들이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다고 답합니다(33절).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빼앗겼지만 영적으로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뜻하신 것이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라고 답하십니다(34절).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실은 죄의 종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35-38절). 

유대인들은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39절)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떠나 살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반대하고 미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40절). 예수님이, 그들이 그들의 아비가 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시자 자신들은 하나님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다고 답합니다(41절).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배척하고 죽이려 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십니다(42-43절).  

이 지점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아비는 악마이며 따라서 그 아비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아볼로스'(“악마” 혹은 “마귀”)는 악한 세력의 통치자인 사탄을 가리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떠나 그분의 진리를 거스르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이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이름 짓습니다(44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그들이 믿지 않으니, 그들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를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45-47절).  

해설:

성경에서 ‘악마’ 혹은 ‘마귀’라는 단어를 만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부터 책에서 읽거나 들어 온 동화와 전설 혹은 신화를 생각합니다. 뿔이 달리고 눈에서 불꽃이 나오는, 험상궂게 생긴 영적 존재를 생각합니다. ‘귀신’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혼자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 놀래키고 사라지는 영적 존재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과 영적 세계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악마’와 ‘마귀’는 동의어로서 악한 영적 세계를 통치하는 사탄을 가리킵니다. ‘귀신’과 ‘악령’이라는 말도 동의어로서 사탄의 통치 하에서 활동하는 영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라는 말과 “거짓의 아비”라는 말로 부르심으로써 그의 본질을 폭로하십니다. 사탄과 악령은 눈에 보이거나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영적 존재로서 우리를 속여 진리를 떠나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진리를 떠나 거짓을 믿으면 결국 영원한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을 “살인자”라고도 부르십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악한 영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닙니다”(벧전 5:8). 자칫 방비를 풀고 있다 보면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면 사탄의 종이 되고 죄에 속박 된 존재가 됩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일입니다. 31절에 “머물러 있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메노’는 “붙들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의미를 묵상할 때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들음”과 “깨달음”(43절)으로 가능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에 이르려면 그 말씀을 붙들고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5 responses to “요한복음 8장 31-47절: 참된 자유함에 이르는 길”

  1. 오직 죄에서 자유를 얻는것은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고백 하면서도 자주 말씀안에 머물어 있지못하는 처량하고 가련한 인생입니다. 매일 아침 말씀으로 일깨워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려 올립니다.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과 동행하며 이웃과 함께 말씀 순종으로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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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어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참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로인해 사탄의 유혹에서 자유로와 흔들림없이 주님의 길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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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주님! 주신 이 말씀을 안고 세상에 나가 사탄 마귀들에게 고통 당하고 있는 생명들에게 전하므로 그들이 자유를 얻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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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먼저는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착각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종교적인 형식과 습관이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착각으로 신앙생활하지 않게 하소서! 진실로 하나님 안에 거하여 (Abide)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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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요한복음서는 특별한 책입니다. 독서의 여러 방법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어려워서 여러 번 읽어야 하기도 하지만, 전하는 이미지가 아름다와서, 사용하는 단어가 한 두가지 의미 이상을 품고 있어서, 앞 뒤에 놓인 문단 속에 단서가 있는 것 같아서 여러 번을 천천히, 찬찬히, 세밀하게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청중에게 하시는 말씀도 까다롭고 껄끄러운 말씀입니다. 한국 사람 독자는 마음에 걸릴 것 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드러내는 “교훈”만 건지면 되지만, 유대인 독자가 읽을 때는 당시의 청중으로서 너희 아비는 마귀다, “너희는 너희 아버지 마귀에게 속하여 너희 아버지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한다 (44절)” 라는 질타를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겠는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43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냐 예정론이냐 하는 토론에서 자유의지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태로 정리하고 살았는데 요즘엔 -요한복음서를 묵상하면서 –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누구를 사랑하고 믿는 것이 과연 내 의지로 되는 일인가? 예수님 시대의 청중에게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느냐고 물을 수 있는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겨울이고, 아직도 전쟁 중이고, 아직도 앓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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