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3-41절: 누가 눈 멀었는가?

해설:

예수께서 눈먼 사람을 고친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14절).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를 데려다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15절). 그 사람이 자초지종을 말하자 바리새파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납니다. 한 편에서는 안식일 규정을 어겼으니 그는 하나님의 사람일 수가 없다고 했고(16절), 다른 한 편에서는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행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 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묻습니다. 그는 “그분은 예언자입니다”(17절)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의 부모를 데려다가 취조합니다(18-19절). 부모는 아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받을 후환이 두려워 대답을 회피합니다(20-23절). 할 수 없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묻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24절)라고 단정 하고는 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 합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25절)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그의 증언을 무시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묻습니다(26절). 그 사람은 이미 말했는데 왜 또 묻느냐고, 당신들도 그 사람의 제자가 되고 싶으냐고 묻습니다(27절). 그들은,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는 사실을 자부 하면서 그를 고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28-29절). 그는 그분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은 분명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 고쳐 주신 것이라면 그분은 분명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일 것이라고 증언합니다(30-33절). 그들은 그를 모욕한 후 성전 바깥으로 쫓아냅니다(34절).

그 사람이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를 다시 찾아 오십니다. 그분은 “네가 인자를 믿느냐?”(35절)고 물으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눈을 뜬 이후로는 그분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36절)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37절)라고 답하십니다. 그 때 그는 비로소 “주님, 내가 믿습니다”(38절)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3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40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41절)고 답하십니다. 

묵상:

9장의 이야기는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이 영적으로 눈을 떠 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중에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점점 알아 갑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라는 사람”(11절)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예언자”(17절)로, 얼마 후에는 “하나님에게서 보냄 받은 사람”(33절)이라고 부릅니다. 성전 바깥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그분을 “인자”로, “주님”(38절)으로 고백합니다. 육신의 눈을 뜨고 더 이상 거지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물리적인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지만, 그것을 통해 그는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적인 치유를 통해 영적인 개안에 이른 것입니다. 

반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제자로서 율법을 알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밝히 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눈 멀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불쌍하게 보았지만, 정말 불쌍한 사람들은 영적 자만심으로 인해 눈이 멀었던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8장에서 예수님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누었던 긴 대화를 배경 삼아 읽어야 합니다. 그 대화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신적인 정체를 밝히시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분노하여 돌을 들어 치려 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완전히 멀어 버린 것입니다. 

8장 59절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의 살의로 인해 “예수께서는 몸을 피해서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다”고 되어 있고, 9장 34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눈 멀었던 사람을 “바깥으로 내쫓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 멀어 있었고, 영적으로 눈 뜬 사람들은 성전 바깥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성전이 영적 눈 먼 사람들의 아지트로 전락한 것입니다. 

4 responses to “요한복음 9장 13-41절: 누가 눈 멀었는가?”

  1.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영적인 눈이 먼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영적으로 눈이 떴다라는 착각에 살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의 눈과 귀를 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소서. 내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제한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의 눈을 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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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바리세파 사람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면서 나면서부터 눈이 먼자의 눈을 뜬 사건을 접하면서 영적인 눈이 멀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그들의 권세와 부를 잃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됩니다. 주님! 우리 모두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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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태어날때 부터 세상에서 보이는 사물들을 보아왔기에 시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멀리서 오는 맹인 들을 피해가며 걸어왔습니다. 실제로 내 자신이 영적인 맹인 인줄도 모르고 살아 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약점을 비난하고 정죄 하며 살아 왔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이신 예수님, 예언자이신 예수님, 보내심 받은 예수님을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의 독생자 메시아로 소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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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It’s an upside-down world!” 이 말을 어제도, 그제도 했습니다. 종업원이 구해지지 않아 가게에서 오픈 투 클로즈 일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help wanted 싸인을 붙여 놓았으나 지원자가 거의 없습니다. 일하고 싶다 해서 트레이닝 시키면 하루 하고는 그만이거나, 자기에겐 안 맞는 (힘든) 일이라며 안 나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자매가 코로나를 넘기면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해 준 것이 감사해서 급여도 연거푸 올리고 자기들 원하는대로 근무표를 만들어 편리를 봐주었는데 저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을 앞세워 그만 두겠다고 해서 충원이 아니라 아예 새로 뽑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새로 종업원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 이런 사정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혹은 이용하여?) 자기들 필요에 따라 갑자기 일을 안 나오는 자매들이 서운하기만 합니다. 요즘 비지니스 환경 특히 스몰 비지니스를 하는 주인은 ‘갑’이 아닙니다. 종업원들에게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두 세 가지를 넘지 않습니다. 서로 의논해서 만든 근무표에 따라 나오고, 매일 하는 루틴 업무를 되도록 빼먹지 말고 해 달라. 반면 종업원들은 깨끗한 일, 쉽고 간단한 일, 감정 안 상하는 일, 몸이 안 피곤한 일, 개인 용무에 방해 안되는 일, 최저 급여 (캘리포니아는 15불) 이상을 주는 일… 등을 원합니다. 물론 업주나 종업원을 일반화해서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업원을 구할 때까지는 지금 일하는 친구들 비위를 맞추면서 가게를 돌려야 하니 근무시간이 12시간 넘는 데서 오는 육신적, 정신적 피곤도가 요즘 매우 높습니다. 그제는 미국 여선교회 임원 친구가 가게에 와서 이번 주말에 있는 줌행사를 같이 준비해 주었고 어제는 가게 가까운 데 사는 친구가 자기 뜰에서 딴 오렌지를 들고 위문을 왔습니다. It’s an upside-down world! 피곤한 나날을 하소연하면서 외친 말입니다. 오늘 본문도 업사이드 다운입니다. 못 보는 사람은 보고, 보는 사람은 못 봅니다. 안식일과 생명이 자리를 바꾸고 맙니다. 눈을 뜨게 된 사람은 못 볼 것을 보고, 보는 데 지장이 없던 사람은 꼭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지나칩니다. 예수님이 죄인이 되고, 죄인은 자기가 모세요, 아브라함이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보는 (37절) 눈을 열어 주소서.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님의 자녀로 대처하게 하시고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게 하소서. 전쟁 중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낮추고 감정도 이성도 절제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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