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 1-11절: 사랑은 눈 멀지 않았다.

해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은 다시 나사로의 집에 가십니다(1절). 이것이 공생애를 시작한 후 세 번째 맞는 유월절입니다(첫 번째 2:13, 두 번째 6:4).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이었다고 말하는 근거입니다. 이 사건은 나사로가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은 지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사로 남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 큰 잔치를 벌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묘사된 일화에서 처럼 마르다는 음식 준비에 분주하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먹습니다(2절). 

잔치가 계속되는 중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마리아가 나타나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습니다(3절). “나드 향유”는 미용과 치료 목적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던 값진 물품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입니다.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 보면 그 행동에는 성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부를 그분께 드리는 행동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그것을 본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한 성인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나 되는 값진 향유를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4-5절).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요한 저자는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돈욕심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6절). 예수님은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7절)라고 하십니다. 개역개정에는 “그를 가만히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두 가지의 번역을 모두 허락합니다. 새번역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당신의 장례를 위해 미리 향유를 부은 것으로 해석하신 것입니다. 개역개정으로 본다면, 당신의 발에 쏟고 남은 향유를 보관했다가 당신의 장례를 위해 사용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8절)라고 덧붙이십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15장 11절 말씀(“당신들은 반드시 손을 뻗어, 당신들의 땅에서 사는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을 도와주십시오. 그렇다고 하여, 당신들이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을 기억하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묵고 계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집으로 찾아 옵니다.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려는 것이었습니다(9절).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합니다(10-11절). 그로 인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마리아가 나드 향유를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씻을 때, 예수님은 이미 발을 씻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식사를 위해 집안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발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샌들을 신고 활동하는 중에 땀과 먼지가 발에 떡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이 더러워서 씻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나드 향유는 자신이 가진 물건 중에 가장 값비싼 것이었고, 여성이 머리털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행위는 자신의 전부를 바치겠다는 몸짓이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바치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행위는 자신도 모르는 채 미래의 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마리아는 한 주일 후에 예수께서 돌아가실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의 행위는 그 죽음을 위해 준비하도록 그를 이끌었습니다. 지나친 사랑은 ‘맹목적'(눈 먼)이라고 하지만, 실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그것을 준비시켜 줍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사랑하라 그리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있다면,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행해도 모든 선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반면, 사랑은 없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가룟 유다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좋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그의 탐욕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사랑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머리보다 마음이 더 큰 사람이기를 소망합니다.  

4 responses to “요한복음 12장 1-11절: 사랑은 눈 멀지 않았다.”

  1. 주님의 육신은 보이지 않지만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항상 같이하시는 예수님을 보는 마음을 원합니다. 가난한자를 위한 사랑과 희생이 주님을 섬기고 사랑한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이루신 이적을 보기를 원하는것 보다 먼저 주님을 보도록 힘쓰는 결단을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로 고생하는 난민들로 고민하며 함께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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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머리보다 마음으로 섬기게 하소서.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섬기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시간이라고 느끼면 남들의 시선이나 나의 손해를 계산함없이 주저없이 앞으로 나가게 하소서. 당신께서 주시는 영감이 내가 가진 지식과 자부심을 언제나 이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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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룟 유다의 행동과 생각이 아닌, 마리아의 사랑과 행동이 커지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때로는 여러가지 계산과 생각으로 인해서 더 중요한 사랑과 섬김을 잊어버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사랑하며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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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마존 기업의 CEO 베조스의 전부인 멕켄지 스캇이 총 40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뉴스가 어제 나왔습니다.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사업 단체들 430여 곳에 기부했습니다. 부자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건 구경꾼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유다가 마리아에게 향유를 팔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한 것도 철저한 구경꾼의 입장에서 한 말입니다. 본인이 돈주머니를 맡아 살림하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말을 하면 안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쓰는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예수님한테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한테 쓰면 더욱 값진 일이 된다는 계산은 처음부터 머리 속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상징적인 장례를 치룬 것도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다 바쳐서 예수님께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마리아는 오늘 본문에서도 몸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집으로 오셨을 때 발을 물로 씻겨 드리고 자기 옷자락으로 말리기만 해도 환영과 존경의 표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최고급 향유를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300그램이라면 보통 가정에서 쓰는 딸기잼 병만 합니다. 마리아의 집안을 가득 채우고 밖에까지 나갔을 좋은 향내를 상상해봅니다. 유다가 분위기를 망치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같이 있던 사람들은 잔치 내내 향내에 취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마음을 읽은 마리아…사랑과 믿음은 종종 말이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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