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눕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사를 두고 요한은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고 말합니다. 여기서 “끝까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는 뜻일 수도 있고, “남김없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식사를 나누시던 중에 예수님은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4절)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5절) 주십니다. 그것은 당시에 노예가 주인에게 혹은 주인의 손님에게 하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법에 의하면, 노예가 손님 발씻기를 거부하면 주인은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일은 천하게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어 종의 역할을 떠맡아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며 또한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내주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오자 그럴 수 없다고 사양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라고 대답 하시며 받아 들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다시 거부 하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8절)고 답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드려질 당신의 희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9절)라고 청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몸 씻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10절)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신 다음 예수님은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당신이 행한 것처럼 서로 낮아져서 섬기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십니다(12-17절).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은 우선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우리가 따르고 배워야 할 삶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선생의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자리에 섰다면,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더 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팔아 넘겨 죽게 할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즉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2절)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시편의 예언(시 41:9)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18절) 당신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면 ‘내가 곧 나’임을 알라(19절)고 하십니다. ‘내가 곧 나’는 당신이 하나님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꿰뚫어 보십니다.
묵상:
예수님은 당신께서 이루신 그리고 이루실 구원의 사역을 한 편의 모노 드라마를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그분의 성육신 사건을 상징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품 속에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실 구원 사역을 상징합니다. 만왕의 왕께서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실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시로 적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아 들입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너무도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아드님의 그 고귀한 희생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씻으시려는 예수님께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너무도 송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십자가 앞에 머리 숙여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일 때, 그분의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처럼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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