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18-27절: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해설:

예수님께 속하여 그분과 함께 동행한다는 말은 “세상”과 다르게 산다는 뜻입니다(18절). 요한복음 안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사용됩니다.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2)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구원 하시려는 인류를 말하기도 하며, 3)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세 번째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제자들을 미워할 터인데, 그 미움은 그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다”(19절)라는 말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증오하고 배척합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 했으니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20절). 그들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그러는 것입니다(21절).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그랬지만 그분이 오셔서 증언 하셨는데도 믿지 않으니, 이제 그들은 핑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22절).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하는 것이 됩니다(23절).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도 그분을 미워했고 또한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24절). 그 옛날 다윗이 원수들에게 까닭없이 미움을 받았다고 했는데(시 69:4), 그와 동일한 일이 예수님에게 일어났습니다(25절). 

제자들을 홀로 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을 미워하는 세상에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26절, 개역개정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분입니다. 피조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서로 구별되지만 한 몸으로 일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 중에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며 또한 증언하게 하실 것입니다(27절).

묵상: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욕망 안에 “머물러” 살아갑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아담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롬 5:12-21). 아담 안에 머물러 사는 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삶의 열매는 자기 확장이며, 자기 확장의 욕망은 너무도 쉽게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확장의 욕망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하고 혐오하고 배척합니다. 인간의 자기 확장의 욕망을 방해하는 것 중에 최고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면, 자기 확장의 욕구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배척합니다. 아니면, 자기 확장의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 안에 “머물러” 그분에게서 양분을 공급 받아 그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중심성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아를 무한히 확장 시키려는 욕망을 내려 놓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으로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 놓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 오셨고, 인류의 죄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로써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최고, 최대, 지고, 지순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살면 이 사랑의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확장의 욕구로 인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싸움”을 벌이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인해 제자들은 세상과 구별됩니다. 사는 이유가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사는 결과가 다릅니다. 세상은 그 모습을 보고 박수치고 환호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배척하고 제거하려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그랬다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위로하시고 힘 주시고 변호해 주실 것이기 떄문입니다.  

4 responses to “요한복음 15장 18-27절: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1. “세상”을 무엇으로 보는가는 나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는 곧 나 자신의 이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커다란 피조 세계라는 세상이 있습니다. 생명체의 터전,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의 집합체인 세상입니다. 하나님과 대척점에 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존재를 칭할 때도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반대인 나라, 하나님의 가치와 반대인 가치,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력을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악의 시작을 하나님과 분리한 어떤 곳에서 찾는다면 세상도 그곳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라고 말할 때는 이런 두 가지의 뜻을 병행해서 씁니다. 맥락을 보고 어떤 의미의 세상인지 구별해 듣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말할 때 일반성과 개별성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일반성은 한국인, 여성, 엄마, 유권자, 기혼자, 자영업자, 기독교인, 혈액형 B+ 등등이고 나만의 고유한 개별적인 특성은 생김새나 체형, 식성, 취미, 취향, 성격, 질병 등등 한 단어로 서술하기 어려운 부분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고 따른다의 반대지만 동시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일을 실천하는 시간은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이요, 실천의 대상은 다름아닌 세상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따르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시저의 동전과 하나님의 동전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선 시저의 동전만 유통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일은 동전으로 하는 일과 사랑으로 하는 일을 따로 볼 줄 아는 일,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인가 아닌가를 보는 일에 몰두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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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이 나를 미워 할지라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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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가 어디서나 환영받고 화려함을 즐기고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하며 어느새 내가 그런 대접을 바라고 있다면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므로, 빨리 다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님의 말씀을 힘써 따르려 하고 주위에 바른 소리를 할때 멸시와 따돌림과 받고 이익보다 손해를 보는 결정을 내리면 올바른 삶을 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일을 하기위해, 또 우리가 신앙을 지키게 하시기위해 여러방법으로 도우십니다.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주님의 길을 판단하기는 힘듭니다. 신앙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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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마음으로나 피부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것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조롱하고 멸시할때 말씀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근심 걱정 두려움 모든것을 주님께 내려놀고 세상에 눈치보지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웃과함께 말씀순종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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