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수님이 체포되어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갈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 한 사람이 따라갑니다(15절). 여기서의 “다른 제자 한 사람”은 저자인 요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대제사장 관저는 삼엄한 경비로 인해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안뜰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바깥에서 기다리게 하고 먼저 안에 들어가 동정을 살핍니다. 그는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와도 되겠다고 판단하고는 문지기 하녀에게 적당히 둘러대고 데리고 들어갑니다(16절). 하지만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를 의심하여 캐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잡아 떼고 들어가 불을 쬐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몸을 숨깁니다(17-18절).
한편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십니다(19절).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 했는지에 대해 따져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숨김 없이 모든 것을 말하고 다녔으니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고 답하십니다(20-21절). 그러자 경비병 중 한 사람이 무례 하다면서 예수님을 때립니다(22절). 대제사장에게 과잉충성을 하느라 예수님께 무례함을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간단히 타이르십니다(23절). 안나스는 공식적인 재판을 위해 산헤드린 의장이었던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보냅니다(24절).
안나스와 예수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베드로는 아래 뜰에서 불을 쬐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그의 정체를 의심합니다.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잡아 뗍니다(25절). 그러자 베드로에게 귀가 잘렸던 말고의 친척이 그를 알아 보고 압박합니다(26절). 베드로는 다시 부인했고, 그 때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닭이 웁니다(27절).
묵상:
위험 앞에서 베드로가 보여 준 태도는 예수님의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서십니다. 반면, 베드로는 “나는 아니다”라면서 세 번이나 잡아 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아직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일신상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를 부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 했을 때 심하게 깨어져 통곡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주 ‘베드로의 순간’을 만납니다. “당신도 예수를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위험한 상황을 만납니다. 미국이나 한국 같은 곳에서도 반기독교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그런 상황이 점점 많아지고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마주할 때 과연 “나는 예수의 제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예수님을 위해 무시 당하는 것도, 모욕 당하는 것도, 손해 보는 것도, 박해 당하는 것도,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것도 과연 나는 감수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나에게 절대적 존재일 때에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약간의 도움’을 위해 믿는 것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아닙니다”라고 손을 내저을 것입니다. “과연 나는 진짜인가?” 이 아침, 이 질문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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