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 다 이루어진 것을 보시고 “목마르다”(28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시편 69편 21절에 나오는 예언(“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을 타서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을 생각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시편의 예언대로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서 그분의 입에 가져다 댑니다. 그들은 성경의 예언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 예언을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목을 축이시고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함께 운명하십니다(30절). 당신을 통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보통 2-3일 정도 고통을 겪다가 운명합니다. 일 주일 가까이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지 세 시간 정도 지나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일찍 운명하신 이유는 사형 선고를 받고 심한 고문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기진해 있었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 즉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안식일은 유월절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으므로 특별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저자는 “그 안식일은 큰 날이었다”(31절)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시신을 나무에 달아 놓으면 땅이 부정해 진다는 율법(신 21:22-23) 때문에 시신을 나무 위에 매달아 둔 채로 유월절을 지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겨 달라고 청합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병사들이 살아 있는 죄수들의 다리를 꺾습니다(32절).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33절). 그 대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합니다(34절). 요한 저자는 이 지점에서 그것이 직접 본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사실을 첨언 합니다(35절). 그것도 역시 성경(신 12:46; 슥 12:10)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묵상:
요한 저자는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그로 인해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는 또한 그것은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 목격자는 26절에 나오는 “사랑하는 제자” 즉 요한 저자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 사실을 이토록 강조한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요한이 이 글을 쓸 즈음에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실신 했다가 서늘한 돌무덤에서 회복되었다는 헛소문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두 가지의 레파토리를 주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숨겨놓고 날조 했다는 것(마 28:11-15)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실신 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 저자는 그분의 죽음을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둘째, 요한이 이 글을 쓸 즈음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사렛 예수의 몸을 잠시 빌려 쓰고 활동하다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에 떠나셨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영지주의자들'(the Gnostics)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가르침을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릅니다. 요한 저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사렛 예수의 몸을 탈처럼 쓰고 활동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유혹과 고난을 겪으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성경의 예언을 따라 행하시고 그 예언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원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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