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1-10절: 부활이 남긴 흔적

해설:

그동안 우리는, 요한 저자가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동일한 사건을 전할 때, 그들이 주목하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빈무덤에 대한 보도에서도 동일한 경향이 보입니다.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1절)은 오늘로 하면 일요일 새벽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오늘의 토요일)을 한 주일의 마지막 날로 여겼고, 일요일을 주간 첫 날로 여겼습니다.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에는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었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일요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무덤에 가 보니,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간 것으로 생각하고 급히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2절)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립니다. 두 제자는 급히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무덤에 먼저 당도한 것은 “그 다른 제자”(4절)였는데, 그는 무덤 입구에 선 채 내부를 살펴 봅니다(5절). 반면 늦게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 안으로 곧장 뛰어 들어갑니다(6절). 여기서도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보입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신을 싸 맸던 삼베가 그대로 놓여 있고 머리를 싸 맸던 수건이 따로 개켜 있는 것을 봅니다(7절). 무덤 입구에 서 있던 “그 다른 제자”도 무덤 안으로 들어와 상황을 살펴 보고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믿었다”(8절)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뜻이 아니라 여인의 말대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예수께서 부활 하셨다는 뜻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성경의 예언(가령 시 16:10; 사 53:10-12; 호 6:2)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9절). 하지만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추측한 대로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 맞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도둑이 든 것이라면 꽤 값비싼 삼베를 그냥 두고 갔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도둑 맞았다면 무덤 내부가 흩어져 있었을 것인데, 누군가가 정리해 놓고 간 것처럼 정돈 되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궁금해 하면서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묵상: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는 과정에 대해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어떤 학자는 마가복음에 대해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 간단한 서론을 붙인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네 복음서 모두에게 진실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를 기록 하면서 마지막 일 주일의 사건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사건이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비하면 부활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도 적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하면 요한복음이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일곱장(13장부터 19장까지)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할애한 저자는 겨우 두장(20-21장)을 부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짧은 한 장으로 부활의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부활 사건이 십자가 사건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은 지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일어난 사건 그대로 묘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 부활 사건은 지상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사건입니다. 부활의 과정을 목격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과정을 목격 했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을 보고 기록 했다고 해도 그 기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넘어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사건으로 인해 지상에 남겨진 흔적(바닥에 놓여 있던 삼베와 개켜저 있던 수건)을 보고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부활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상대 안에 갇힌 우리에게 절대를 보여 주고, 시간의 한계 안에 갇힌 우리에게 영원을 보여 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실 때에만 받아 들일 수 있는 신비입니다. 

4 responses to “요한복음 20장 1-10절: 부활이 남긴 흔적”

  1. 부활의 주님을 듣고 읽고 믿어왔습니다. 영의 마음과 눈이 밝아지기를 원합니다. 돌문이 열리고 잘 정리된 빈 무덤을 정확하게 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듣고 읽는 믿음에서 보고 믿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십자가의 수모와 고통을 지나 주님 부활에 동참해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절망과 어두운 세상에 빛 이시고 부활의 주님을 선포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2. 부활의 진리를 믿고 사는 Easter People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부활의 기쁨과 진리가 삶을 통해서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 머리로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나, 그 진리를 경험하고 기쁨을 아는 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Like

  3. 주님!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녀인 마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잉태하게 하시고 인류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렸으니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데려 가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도 반드시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이 믿음 변치 않게 하시고 이웃에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Like

  4. 오늘 아침도 지난 몇 년동안 그랬듯이 일어나 식탁으로 와서 앉습니다. 짧은 기도를 하고 성경을 펼쳐 읽습니다. 조금 천천히 한 번 더 읽습니다. 컴퓨터를 열고 목사님 해설을 읽습니다. 본문을 또 읽습니다. ‘부활’ 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죽음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빈 무덤을 목격한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봐도 무엇을 보는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무덤이 비어 있음을, 예수님이 없어졌음을 보면서 이것이 곧 부활이라고 연결 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서인지 모릅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줄 언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함께 한 시간 동안 들은 말씀이 그렇게도 많은데 이 상황에 대해 미리 설명해 준 부분이 기억나지 않아서인지 모릅니다. 빈 무덤을 본 제자들은 마리아는 빼고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짧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회로 갈 때 하던 말의 연장에서 부활에 관한 생각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코비드의 출현으로,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삶의 모든 것이 빠르게 또 천천히 달라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달력으로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이 세기말적인 현상이 아닌가하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문명의 발전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기말적 혼란과 절망, 비탄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주목했습니다. 학자나 작가들이 이미 예견해 온 일들을 우리는 지금 각자의 삶에서 “자기 집”에서 이제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의 간극, 현상과 깨달음의 차이가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의 차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눴습니다. 지금은 신화 (myth)라는 단어를 사실 (fact)의 반대말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잘못 알려진 상식을 말할 때 신화라고 말합니다. 부활을 신화라고,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The Case for GOD” 책의 서문에서 신화에는 역사적인 사건을 해설하려는 의도는 전혀 들어 있지 않으며, 어떤 뜻에서 (in some sense) 한 번 일어났으나 또한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A myth was never intended as an accurate account of a historical event; it was something that had in some sense happened once but that also happens all the time.” 하늘의 일은 신화입니다. 빈 무덤을 목격하고도 땅의 언어로 바꾸지 못했던 제자들은 늘 일어나는 땅의 일 속에서 부활을 보게 됩니다. 부활은 부활주일 하루로 끝나지 않는 신화입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