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무덤 밖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가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날 저녁, “제자들”(19절)은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와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들은 이야기로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유대 사람들”즉 예수님을 죽게 한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을 잡으러 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홀연히 그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했다는 말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넘어 가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3차원 공간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실 수도 있고 그 공간을 넘어 가실 수 있습니다. 개미가 가려는 길에 큰 바위가 막고 있어서 어쩌지 못할 때 내가 그 바위를 들어 옮겨 주면 개미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셈입니다. 개미는 3차원(입체) 안에 살고 있지만 2차원(평면)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험하는 3차원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이는 이유는 그런 차이 때문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십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상투적 인사말(“샬롬”)입니다. 상투적인 인사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인사를 하실 때가 그랬을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유령을 보는 것처럼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못 박힌 두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20절). 제자들은 그제서야 그분임을 알아 보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평화를 기원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이 세상(3:16)의 구원을 위해 이번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성령을 받아라”고 하십니다(22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숨을 불어 넣으신 것(창 2:7)을 생각 나게 합니다. 그 숨은 우리가 쉬는 숨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가신 주님은 당신 안에 있는 성령을 그들에게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오순절에 그들에게 강력하게 임할 성령의 강림을 미리 보여 주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3절)라고 덧붙이십니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은 모든 사람이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일입니다.
묵상: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호흡을 가진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선택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작품은 심하게 훼손 되었고 인간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피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과 인류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세상과 인류를 위한 그분의 사랑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이만큼 너희를 사랑한다”는 강력한 웅변입니다.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로 표현하여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몸으로 보여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랑을 발견하면 그분의 품을 찾아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당신의 사명을 다 마친 후,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시고 세상에 보내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세상이 무서워 문을 안으로 닫아 걸고 떨고 있던 제자들은 이 말씀에 더 심하게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후” 하고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22절)고 하십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그들은 그 때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순절에 임할 성령의 강림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처럼 빚어진 흙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그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고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 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세상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 받고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어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혹시 우리는 안으로 걸어잠근 방 안에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성령께서 나가라고 하시는데 못 들은 척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 일로 인해 신음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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