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1-14절: 우리를 지켜 보시는 주님

해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 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입니다.

“디베랴 바다”(1절)는 갈릴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부산 앞바다”라는 말처럼 디베랴라는 동네 근처 호수를 가리킵니다. 시몬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호수로 나갑니다(2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아직 무엇을 어찌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헛수고만 합니다(3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새벽이 밝아오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로 다가 오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4절). 예수께서는 “얘들아”라고 부르십니다. 헬라어 ‘파이디아’는 어른이 아이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무얼 좀 잡았느냐?”(5절)는 질문은 “아무 것도 못 잡았지?”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밤새도록 허탕을 쳤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낯선 그 사람의 말에 이끌려 별 기대감 없이 그물을 바다에 던져 넣습니다. 한참 후에 그물을 만져 보니 그물 가득 고기가 잡힌 것이 느껴집니다. 그 사실에 다들 놀라고 있는데,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7절)가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 차립니다. 그와 비슷한 일이 예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제자가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베드로에게 말하자,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 내려 예수님께 달려 갑니다. 다른 제자들은 배를 저어 고기로 가득찬 그물을 끌고 해안으로 나왔습니다(8절). 

그들이 해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벌써 숯불을 피워 놓고 생선과 빵을 굽고 계셨습니다(9절). 그들은 반가운 마음에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께 달려 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 몇 마리를 가져 오라고 하셨고(10절), 제자들은 다시 배로 돌아가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그물 안에는 큰 물고기만 153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숫자 153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 왔는데,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물고기의 종류가 153 가지였다는 사실과 관계 있다고 보는 것이 제일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11절). 

생선 몇 마리를 가져 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12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다시 신비감에 젖어 듭니다. 그분이 예수님인 것은 알지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너무도 신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빵과 생선을 건네 주십니다(13절). 이 아침 식사로 인해 그들의 추운 마음은 따뜻해 졌을 것입니다. 요한 저자는 이것이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당신을 드러내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베드로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도 아직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이 워낙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영적인 눈이 단번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 했던 도마도 아직 삶의 변화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이 잦아들자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빈무덤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해 준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으로 알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3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허탕을 칩니다. 새벽이 되어 피곤이 몰려올 무렵,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그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분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오른 쪽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그대로 하자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호숫가로 불러 내셔서 손수 빵과 생선을 구워 주십니다. 밤새도록 노동과 추위에 지쳐 있던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새로운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 만남으로 인해 그들은, 주님은 부활하셔서 먼 세상으로 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 안에서 함께 활동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그분이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그들을 보고 계시고 필요할 때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다가 헛헛한 마음으로 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 밤새도록 수고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그들의 상황이 오늘의 우리의 삶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시며 늘 함께 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망각하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애쓰고 힘씁니다. 그분의 임재에 눈을 떠 그분과 함께 동행할 때 주님께서는 흑백 영화같은 우리의 일상을 총천연색 파노라마 시네마스코프로 변하게 하십니다.  

6 responses to “요한복음 21장 1-14절: 우리를 지켜 보시는 주님”

  1.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함께하신다는 주님을 잊고 혼자서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나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너무나 얄팍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더 깊게 아주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항상 동행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멀고 거치고 험한 세상에서 살지만 주의 영이 함께하시는 언약을 항상기억하며 기뻐하는 삶을 간구합니다. 이웃과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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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불꽃 같은 눈으로 지금도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계시는 주님! 오늘도 그 믿음 변치 않고 거룩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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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디베랴 호수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무척 어색합니다. 21장도 “이 일이 일어난 후”라고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스승을 만나 그분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도마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일을 겪고 난 이후인데도 제자들의 모습은 어색하고 서먹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음 날 새벽이 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허탈함의 연속입니다. 세상은 모르는 일,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경험하고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우울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음성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았지만 지금 그들 곁에서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져 보라고 말하는 이가 스승인줄 모릅니다. 주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물 속으로 뛰어 듭니다. 빨리 예수님 계신 모래사장으로 가려고 그랬는지 당황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이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일이라고 기록합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돌아간 제자들, 예수님을 겨우 알아본 베드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신 예수님…어색하고 서먹한 재회입니다. 본문 어디에도 제자들이 민첩하게 척척 움직였다는 인상은 없습니다. 맥이 풀린 모습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죽어서 무덤에 있는 분으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부활은 이처럼 불편하고 낯선 사건인가 봅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가발전이 되지 않는 전력인가 봅니다. 예수님이 불을 댕겨 주셔야 전기가 돌고, 예수님이 어깨를 잡아 올려 주셔야 일어날 수 있나 봅니다. 고난주간에 관한 글 중에서 목요일의 유월절 만찬 자리를 중요하게 여긴 글이 있는데 글쓴이는 유월절 식탁과 디베랴 해변가의 식탁을 연결합니다. 유월절 식탁 – 재판 – 십자가 – 무덤 – 식탁 (다락방과 해변).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십자가가 있는 골고다로 데리고 가신다거나, 아예 빌라도와 산헤드린 앞에 서서 ‘봐라, 말한대로 내가 이렇게 살아나지 않았느냐? 이제는 믿느냐?’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는 제자들이 중요했습니다. 그들을 격려하고 ‘먹이고’ 안정시키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해변에 차려진 소박한 식사 자리를 상상합니다. 따뜻한 불에 몸이 녹고, 음식이 들어가니 마음도 좋아집니다. 웃음 소리도 나는 듯 합니다. 갓 구워진 빵 냄새, 고소한 생선 냄새도 익숙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제자들입니다. 우울함이 씻겨진 얼굴입니다. 나도 이들처럼 기운을 되찾고 싶습니다. 무덤에서 나와 커다란 바다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합니다. 주님의 숨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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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만찬의 향기가 나는듯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다른 어떤것 보다도 중요하셨다…. 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하나님은 이 새상에 살고 있는 이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셨다니…. 감사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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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자들의 기운빠진 모습에서 나의 지친모습이 보입니다. 지친 제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하시고 음식을 준비하신 주님…. 나의 마음에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 와서 아침을 먹으라..”.

    이 말씀으로 은혜를 먹으며 힘을 얻습니다.
    늘 먹이시고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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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들의 약함을 책망치 않으시고 고기잡이와 식사까지 친히 도우신 예수님. 늘 우리를 기다리시며 사랑하시는 예수님. 그의 사랑에 저희 마음이 감동으로 넘칩니다. 십자가의 믿음이 의무감이나 두려움에 근본을 둔다면 그렇게 많은 순교가 희생이 있을리 없었을겁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용서하신 엄마품에 안기는 것처럼 실수투성이 우리를 위해 팔 벌리시는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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