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 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입니다.
“디베랴 바다”(1절)는 갈릴리 호수를 가리킵니다. “부산 앞바다”라는 말처럼 디베랴라는 동네 근처 호수를 가리킵니다. 시몬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호수로 나갑니다(2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아직 무엇을 어찌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헛수고만 합니다(3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새벽이 밝아오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로 다가 오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4절). 예수께서는 “얘들아”라고 부르십니다. 헬라어 ‘파이디아’는 어른이 아이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무얼 좀 잡았느냐?”(5절)는 질문은 “아무 것도 못 잡았지?”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밤새도록 허탕을 쳤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낯선 그 사람의 말에 이끌려 별 기대감 없이 그물을 바다에 던져 넣습니다. 한참 후에 그물을 만져 보니 그물 가득 고기가 잡힌 것이 느껴집니다. 그 사실에 다들 놀라고 있는데,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7절)가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 차립니다. 그와 비슷한 일이 예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제자가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베드로에게 말하자,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 내려 예수님께 달려 갑니다. 다른 제자들은 배를 저어 고기로 가득찬 그물을 끌고 해안으로 나왔습니다(8절).
그들이 해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벌써 숯불을 피워 놓고 생선과 빵을 굽고 계셨습니다(9절). 그들은 반가운 마음에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께 달려 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 몇 마리를 가져 오라고 하셨고(10절), 제자들은 다시 배로 돌아가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그물 안에는 큰 물고기만 153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숫자 153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 왔는데,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물고기의 종류가 153 가지였다는 사실과 관계 있다고 보는 것이 제일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11절).
생선 몇 마리를 가져 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12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다시 신비감에 젖어 듭니다. 그분이 예수님인 것은 알지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너무도 신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빵과 생선을 건네 주십니다(13절). 이 아침 식사로 인해 그들의 추운 마음은 따뜻해 졌을 것입니다. 요한 저자는 이것이 부활하신 후에 세 번째로 당신을 드러내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베드로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도 아직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이 워낙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영적인 눈이 단번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 했던 도마도 아직 삶의 변화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이 잦아들자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빈무덤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해 준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으로 알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3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허탕을 칩니다. 새벽이 되어 피곤이 몰려올 무렵,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그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분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오른 쪽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그대로 하자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호숫가로 불러 내셔서 손수 빵과 생선을 구워 주십니다. 밤새도록 노동과 추위에 지쳐 있던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새로운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 만남으로 인해 그들은, 주님은 부활하셔서 먼 세상으로 가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 안에서 함께 활동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그분이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그들을 보고 계시고 필요할 때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다가 헛헛한 마음으로 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 밤새도록 수고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그들의 상황이 오늘의 우리의 삶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시며 늘 함께 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망각하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해 보려고 애쓰고 힘씁니다. 그분의 임재에 눈을 떠 그분과 함께 동행할 때 주님께서는 흑백 영화같은 우리의 일상을 총천연색 파노라마 시네마스코프로 변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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