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저자는(혹은 저자들은) 첫 사람 아담에게 거슬러 올라가 족보를 써 내려 갑니다(1절). 그는 아담의 자녀들 가운데 셋의 계보를 따라 족보를 이어 노아에게 이르고, 이어서 세 아들의 계보를 소개 합니다(2-4절). 그는 야벳의 후손(5-7절)과 함의 자손을 소개한 다음(8-16절) 셈의 자손으로 초점을 돌립니다(17-26절). 아브라함이 셈의 후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27절). 아브라함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저자는 먼저 이삭 외의 다른 아들들의 자손을 소개합니다(28-33절). 그런 다음 그는 이삭의 후손에 초점을 맞춥니다(34-35절). 여기서도 저자는 먼저 에서의 후손들을 소개합니다(34-37절). 그와 함께 에서의 자손이 자리 잡게 된 세일(38-42절)과 에돔(43-54절)의 원주민들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야곱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선민의 역사를 소개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1장의 족보에서 19절이 특별히 눈길을 끕니다. 에벨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한 아들의 이름을 벨렉이라고 짓습니다. 벨렉은 ‘나뉘다’라는 의미입니다. 에벨과 벨렉의 이름은 창세기 10장 25절과 11장 17-19절에 나옵니다. 그 사이에 그 유명한 바벨탑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앞뒤 정황을 살펴 보면, 에벨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벨렉이라고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역대지 저자는 “그 때에 세계 인종이 나뉘었다고 해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직역하면 개역개정처럼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라고 해야 합니다. “땅이 나뉘었다”는 말은 대륙이 분리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인해 인류가 분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선택하여 모든 민족을 상대 하기로 정하십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얼마 후 아브람을 불러 내십니다.
묵상:
이 족보는 ‘처음’, ‘시작’, ‘원류’, ‘원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유다 백성이 바빌로니아에서 원치 않는 포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현실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제사장 백성이라는 자부심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참담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모든 희망을 접고 땅만 바라 보면서 비루한 일상을 견디는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저자는 희망을 찾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돌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위기의 때에 역사를 돌아 본다고 합니다. 그는 분열 왕국의 시대를 거슬러 솔로몬과 다윗과 사울에게로 올라가고, 그들로부터 족장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언어와 문화가 나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대홍수 이전으로 더듬어 올라가 결국 아담에게 이릅니다.
길을 잃으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저자도 인류의 원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돌아보며 길을 찾습니다. 그 지점에 서니 어디에서 길을 잃었고 어디로 가야 했는지가 비로소 눈에 보입니다. 그것을 보고 저자는 자신이 손에 있던 자료들을 뒤지고 편집하여 역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미 훌륭한 역사 기록들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찾은 길을 길 잃은 유다 백성에게 알려 주기 위해 다시 씁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기록 했지만 실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 책에는 성령의 영감이 깃들게 되고 성경으로 인정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도 자주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 압도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성경을 펼쳐 돈독히 일고 겸손히 묵상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길을 찾고 그 길에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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