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상 7장: 북쪽 지파들의 족보

해설:

저자는 이스라엘의 북쪽 지파들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저자가 이 역사를 정리할 즈음에 이 지파들은 이미 사라진 다음입니다. 이 지파들은 남북 왕국이 분리 되었을 때 다윗 왕조를 거부하고 북왕국을 세웠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합니다. 앗시리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를 제국의 여러 나라에 이주하여 살게 했고 제국의 여러 민족들을 이스라엘 땅에 이주하여 살게 합니다. 혈통을 섞어 버림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백 년 여가 지난 시점에 이 역사가 기록 되었으니, 북쪽 지파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북쪽 지파들의 족보는 다른 지파들의 그것보다 훨씬 간략합니다. 저자는 잇사갈 지파(1-5절), 베냐민 지파과 단 지파(6-12절), 납달리 지파(13절), 므낫세 지파의 절반(14-19절), 에브라임 지파(20-29절), 아셀 지파(30-40절) 순으로 족보를 소개합니다. 

묵상:

북쪽 지파들의 족보를 정리하는 동안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남왕국도 한 세기 반 만에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유다 지파의 혈통은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쪽의 지파들은 2백여 년 동안 혈통이 뒤섞이는 바람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일 혈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혈통이 섞이면 다른 민족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북쪽 지파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간략하게나마 북쪽 지파들의 족보를 정리한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근거한 희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북쪽 지파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믿었을 것입니다. 사라진 북쪽 지파들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만물을 있게 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방법으로 사라진 북쪽 지파들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저자의 그 믿음은 옳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시작하신 구원의 계획을 멈추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때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혈통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새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새 이스라엘(교회)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6 responses to “역대지상 7장: 북쪽 지파들의 족보”

  1. 우리 조상들이 세운 발해를 생각나게 하는 북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대조영의 발해 건국과 거란에 의한 패망한 발해를 생각나게 합니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음을 믿으며 끝내는 예수님을 통해 민족과 국가를 넘어 온 인류에 새로운 희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나라를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영원한 주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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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모든 인종과 나라와 혈통과 상관없이, 누구던지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언약을 믿습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주님의 상속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자주 넘어집니다. 이웃과함께 주님과 동행하며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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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스라엘의 혈통은 여러 민족과 섞여서 순수함을 잃었고 목이 곧고 제 소견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걸 작품인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스스로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 오셔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오늘도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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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놀라운 계획들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 회복과 희망은 어떠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신실하심으로 부터 시작됨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회복하시고 구원시키고 희망을 주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 은혜가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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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내가족, 내친구,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지구 저편의 사람들, 믿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소서. 또 내가 존재하기위해 수 많은 조상들이 이전에 계셨다는것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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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주말에 한국에서 방문 온 조카 내외를 잠깐 만났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가족끼리 결혼식을 하고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출산 육아 휴직이 끝나 직장으로 복귀하기 전에 짧게라도 여행을 한다며 갓난 아기는 친정에 맡기고 신랑과 둘이 엘에이에 왔습니다. 대학교 때 어학연수를 한다고 와서 우리집에서 몇 달 살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조카가 “큰엄마 큰아버지는 십년 전이랑 같으셔요” 이럽니다. 십년 전? 무슨 십년 전? 너 우리 집에서 산 게 오륙년 전 아니니? 6년 전쯤이잖아? 조카가 그게 10년 전이라는 “증거”를 댑니다. “그 때 두 분이 곧 가게 시작하실거라고 저 데리고 가셔서 보여 주시고 그랬는데요?” 정확하게 9년 전 일입니다. 체감온도처럼 객관적인 온도와 내가 느끼는 온도가 다르듯 시간의 흐름도 내 기억 속의 시간과 사실적인 연대가 맞지 않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상기하고 되짚는 이유는 그 당시의 감정이 남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보다 감정에 더 민감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사실을 주도합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일은 그 일에 특별한 감정이 붙어 있지 않아서 입니다. 역대지처럼 과거의 이름과 사건을 기록한 책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나가는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름을 읽고 그들이 남긴 유산 – 정복해 살다가 결국 빼앗긴 땅이든, 여러 아내와 아들 덕에 이룬 막강한 병력이었든, 끊기지 않고 이어간 가문의 혈통이든 – 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자 합니다. 아무 뜻 없이 왔다가 괴로움 속에서 부조리한 삶을 마치는 운명이 아니라고, 한 달 뒤 아니 한 주간 뒤에도 기억하지 못할 평범한 하루로 끝나는 오늘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렀다는 ‘느낌’ 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저항의 책읽기입니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판단,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세상의 평가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성경을 펼쳐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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