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저자는 족보 기록을 끝내고 10장부터 역사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 사울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의 최후에 대해서만 기록합니다. 저자의 관심사가 이상적인 왕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한 이야기는 사무엘상 31장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레셋은 이스라엘에게 등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불화와 전쟁이 끊임 없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에 대한 경쟁심과 시기심으로 인해 점점 피폐해지고 그로 인해 국력이 쇠락할 즈음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고, 이스라엘은 무력하게 패합니다. 이스라엘 군은 피신 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추적 당하여 불레셋 군에게 몰살 당합니다(1절). 사울의 아들들도 전사 했고(2절), 사울도 중상을 입습니다(3절). 생존할 희망이 사라지자 사울은 무기당번 병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 병사가 두려워서 주저하자 사울은 자결합니다(4절). 그것을 보고 무기당번 병사도 자결합니다(5절). 이렇게 하여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죽자(6절), 길보아 골짜기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읍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집니다(6절).
다음 날, 불레셋 군사들은 사울의 시신을 발견하고(8절) 그의 머리와 갑옷을 승전의 증거물로 취합니다. 그들은 불레셋 온 나라에 전령을 보내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9절). 그들은 사울의 갑옷을 신전에 보관하고 그의 머리는 다곤 신전(불레셋의 중앙 신전)에 걸어 둡니다(10절).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11절).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강 동쪽에 있는데, 므낫세 반 지파가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사울은 암몬왕 나하스의 위협으로부터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삼상 11장).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여 불레셋 진영에 보냅니다.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훔쳐내어 야베스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매장하고 일 주일 동안 금식하여 예를 표합니다(12절).
이렇게 사울의 최후를 서술한 다음, 저자는 그의 왕권이 비참하게 끝난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점쟁이에게 의존했습니다. 그것을 저자는 “배신”이라고 표현합니다(13절). 저자는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죽이셨다”고 씁니다. 그리고 왕권은 다윗에게로 넘어갑니다.
묵상:
역대지 저자에게 있어서 사울의 인생은 실패의 모델이고 다윗의 인생은 성공의 모델입니다. 그는, 사울이 실패한 왕이 된 이유가 그의 불신앙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합니다. 그는 임금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행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기를 매일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힘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소홀히 했습니다. 그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그의 마음이 멀어질수록 그의 마음은 불안해졌고 조급해졌습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점쟁이들을 찾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하나님은 왕권을 그에게서 거두어 가셨습니다.
저자는 바로 앞(9장)에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와 가장 먼저 성전을 수리하고 제사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을 소개 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울의 불신앙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부각시킵니다. 그의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일상에 예배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크고 작은 악수(惡手)를 두게 했고, 그것이 누적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이 회복되고 번영할 길은 예배에 있다는 교훈입니다.
이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 삶의 중심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이 주님의 마음에 일치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 자신의 손이 아니라 전능자의 손에 붙들려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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