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다윗은 유다 지파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칠년 반 동안 통치합니다. 그가 온 이스라엘 지파의 왕으로 옹립된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사울의 최후에 대해 간단히 기록한 저자는 칠년 반의 헤브론 시대를 생략하고 곧바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따랐던 열한 지파는 이스보셋이 암살 당하자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에게 항복합니다(1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청합니다(2절).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가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뜻을 받아들입니다(3절).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열두 지파의 중심이 될 새로운 수도로 여부스를 주목합니다(4절). 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영토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수도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여부스는 이스라엘 영토의 중심에 있고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마음을 정하자 요압이 군사를 데리고 여부스를 공격하여 성을 점령합니다(5-6절). 다윗은 그곳을 예루살렘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수도로 삼습니다. 그 이후로 그 산성은 ‘다윗성’이라고 불리게 됩니다(7절). 그는 산 주변으로 성을 다시 쌓아 올렸고,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됩니다(8절).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9절)고 적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다윗을 보좌했던 장군들을 소개합니다. 요압이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사실은 6절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견고하게 자리잡고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운 장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세 용사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다윗을 지켰습니다(10-19절). 요압의 동생 아비새도 역시 세 용사와 함께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20-21절). 나중에 경호 대장이 된 브나야 역시 다윗에게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22-25절).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윗의 왕권을 지켜 주었던 군인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26-47절).
묵상:
다윗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는 구원(舊怨)을 내려 놓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는 그의 왕권을 부정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칠년 반 동안이나 그와 대립합니다. 이스보셋이 살해 당한 후에 열한 지파가 다윗에게 찾아 왔을 때, 그는 그들에게 원한을 쏟아 부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가 한 일은 수도를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여부스를 새로운 수도로 택한 것은 이스라엘 영토의 중앙에 있었고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 한 번 전쟁을 치뤄야 했지만, 온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서 다윗은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삼상 13:14)이라고 불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그 마음을 품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이심전심으로 통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살았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의지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찾았기에 그는 열한 지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 놓고 그들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사사로운 이해 관계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위해 섬겼습니다.
이 땅에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모두’를 위한 섬김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지도자들이 섬기기 보다는 군림하려 하고, 권력을 얻고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하고, 주어진 권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평과 정의와 화합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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