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상 13장: 언약궤 이동과 웃사의 죽음

해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규합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고 예루살렘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지도자들과 의논 합니다(1-3절). “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볼 수가 없지 않았습니까?”(3절)라는 말에 사울의 실패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대신 점술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놓고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행하려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은 그 결정을 기쁘게 받아 들입니다(4절). 

당시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불러 모아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올라갑니다(5-7절). 언약궤는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짊어져 옮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새로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실었습니다.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예루살렘을 향해 앞서 가고 다윗과 백성은 그 뒤를 따라가며 흥겨워 했습니다(8절). 

그러던 중에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수레가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어서 언약궤가 떨어지려 했고, 수레를 몰던 웃사가 엉겁결에 언약궤에 손을 댑니다. 그 순간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9-10절). 언약궤가 몸에 닿으면 죽음을 당할 것(민 4:15)이라는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 분노합니다(11절). 자신의 선의를 하나님이 아신다면, 그 정도는 눈 감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포기하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보관하게 합니다(12-13절). 언약궤는 그 집에 석 달 동안 보관 되었는데, 그 사이에 주님께서는 오벳에돔의 집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14절).

묵상:

언약궤를 새로운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항상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언약궤를 가까이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것은 신의 한수와 같았습니다. 언약궤를 새로운 수도에 모심으로써 새로운 임금으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구심점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약궤를 모셔 오는 일을 국가적 행사로 기획했습니다. 언약궤를 실은 수레 뒤로 이어진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며 백성은 흥겨움에 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수레가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충격적인 사건을 일어나게 하십니다. 언약궤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언약궤를 옮기는 절차에 대한 지침을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지침을 가벼이 여겼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웃사가 언약궤에 손을 댄 일로 인해 즉사 당하자, 다윗은 분노합니다. 이 일로 인해 행렬은 중단 되고 언약궤는 다시 이방 사람의 집에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집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하나님 인식에 있어서 거대한 도약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에 하나님은 늘 다윗과 함께 하며 그의 도움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는 분으로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종하고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예배하고 경외하고 순종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6 responses to “역대지상 13장: 언약궤 이동과 웃사의 죽음”

  1. 말씀이 곧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더많이 더깊히 아주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매사에 말씀을 생각하며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허락하신 언약을 항상 경외 하며 거룩하게 여기며 생각하는 삶을 간구합니다. 이웃과 함께 오직 십자가의 은혜 만이 구원의 길 임을 세상에 선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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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약궤를 옮기는 절차 즉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짊어져 옮겨야만하는 지침을 그대로 따라야 했지만 다윗이 그 지침을 가벼이 여겨 생긴 사건을 되색여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측정하는 어리석음이 있음을 고백하고 나의 중심이 내 관념이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명심하여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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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윗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자가 되는 기쁨에 취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절차를 가벼이 여겨 언약궤가 몸에 닿으면 죽음을 당할 것(민 4:15)이라는 말씀을 잊어 버렸는지 아니면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하였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킨 행위에 대한 댓가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조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정권을 인수 받게 되는데 주님! 그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또한 나의 삶속에서도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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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내 삶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인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는지 돌이켜 봅니다. 목적만 선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들을 하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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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앞의 12장에서 다윗은 각 지파의 용사들과 같이 잔치를 벌이며 새로운 왕가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지파간의 화합과 결속을 목표로 새로운 왕이 펼치는 새 시대를 꿈꾸고 계획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오늘 13장은 온 백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행사를 묘사합니다. 유다 지파의 땅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 두었던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예루살렘의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도중에 궤가 떨어질 뻔하고, 이를 막으려고 궤를 붙잡은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기쁨과 축제의 자리가 공포와 슬픔의 사고현장으로 급변하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겁에 질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까지 모셔오는 계획을 취소하고 가까운 데 있는 오벳에돔의 집에 모시기로 합니다. 언약궤를 이동하는 다윗의 계획은 뜻은 가상하나 실제로는 옳지 않은 일이 되고 맙니다. 수레에 실어 소가 끌고 가게 한 것부터가 틀렸습니다. 수레를 모는 소는 아비나답 소유의 소였을 것입니다. 그 소를 모는 웃사와 아히오는 아비나답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싣고 이동해야 하는 원래의 법도가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매사에 있어 어디까지 철저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는 유연하게 다루어도 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약궤를 다루는 일은 모세가 명한 규례이기에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서’ 바꾸거나 개선할 일은 아닙니다. 다윗이 집권 초기에 이런 대형 사고를 만났다는 것은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계획대로 웃사와 아히오가 예루살렘까지 잘 모셔 왔다면 오히려 교만과 안일 속에 빠지는 일이 되었을 지 모릅니다. 잠시 오벳에돔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왕의 명령을 받고 난감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을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나의 의도와 계획이 크게 실패할 때 겸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살피게 하시고, 뜻밖의 숙제를 받을 때엔 조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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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명분으로만 보면 언약궤를 옮겨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절차를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떠오르는 민심이나 정치적 업적으로 흥분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어깨에 메고 가는 더디 가는 길보다 자기 계산으로 가마에 끌고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나 규모를 보시지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규칙과 복종을 강요하는 하나님이라기보다는 나를 매사에 우선순위로 두느냐 엄중히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적용하고 싶습니다. 나는 남들앞에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만큼 합니다 같은 과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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