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그로부터 석달 후에 다윗은 정해진 절차를 따라 언약궤를 옮겨올 계획을 세웁니다(1-2절).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과 레위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읍니다(3-10절). 그는 제사장 사독과 레위인의 지도자들을 불러 지난 과오를 설명하고 다시 언약궤를 옮겨 오자고 제안합니다(11-13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정결례를 행한 후에 언약궤를 어깨에 멥니다(14-15절). 그는 레위 족장들에게 지시하여 음악 맡을 사람들을 준비하게 합니다(16-24절).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다윗은 행렬을 이끌고 오벳에돔의 집으로 갑니다(25절). 레위 사람들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바칩니다(26절). 다윗은 에봇을 입고 언약궤를 옮기는 일과 찬양하는 일을 맡은 모든 이들은 고운 모시옷을 입었습니다(27절). 언약궤를 멘 행렬이 걸음을 떼자 음악을 맡은 사람들이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예루살렘으로 이동합니다(28절).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할 즈음,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 왕이 춤추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그를 업신여깁니다(29절).
묵상:
웃사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희생을 통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위엄을 자각하고 그 위엄에 맞게 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벌백계의 도구로 사용된 웃사만 억울하게 된 것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생 뿐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생각하면 그 의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선택하신 것이라면 그분의 정의에 맞게 그를 처분 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인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존엄에 맞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대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 바로 서고 그분의 은총을 입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언약궤를 메는 일을 맡은 레위인들은 적지 않게 겁이 났을 것입니다. 석달 전에 웃사가 즉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레위 사람들을 도우셨다”(26절)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제사 드릴 마음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풍성한 제물로 제사를 드린 다음, 자신들에게 언약궤를 향해 다가갔을 것입니다. 방금 잡아 바친 제물처럼 자신들도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물로 바쳐지기를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언약궤를 메었고 아무 일 없이 그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가 범접하기에 너무나도 위험한 분입니다. 하지만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생각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 제사를 드릴 생각을 넣어주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가 그분에게 다가갈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린 희생 제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 무서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그 품을 찾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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