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상 19장: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

해설:

요단 강 동쪽에 이스라엘과 경계선을 맞대고 있던 세 나라는 (북쪽부터) 암몬, 모압 그리고 에돔이었습니다. 시리아는 그보다 더 동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암몬을 다스리던 나하스 왕은 다윗과 좋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를 잇자 다윗은 조문 사절단을 파견합니다(1-2절). 하지만 신하들은 새로 왕이 된 하눈에게 조문 사절단에 대한 의심을 심어 줍니다(3절). 새로 왕위에 오른 하눈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절단에게 모욕적인 행위를 하고 돌려 보냅니다(4절).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다윗은 사절단을 보호하기 위해 여리고에 머물게 합니다(5절).

다윗이 보복해 올 것을 예상한 암몬의 지도자들은 시리아에 막대한 돈을 보내어 용병을 고용하여 전투를 준비합니다(6-7절). 다윗은 요압에게 전투 부대를 맡겨 출동시킵니다(8절). 그러자 암몬 군도 출동했고, 이스라엘 군은 두 군대 사이에 포위된 형국이 되었습니다(9절). 요압은 정예병들을 뽑아 시리아 군대와 맞서게 하고, 동생 아비새에게는 나머지 군인들로 암몬을 맞서게 합니다(10-11절). 요압은 아비새에게 전투 상황을 보아 서로 돕자고 제안합니다(12-13절).  

요압이 정예병을 이끌고 시리아 진영을 공격하자 군사들이 겁에 질려 도망합니다(14절). 그 모습을 보고 암몬 군대도 사기를 잃고 도망합니다(15절). 전쟁이 싱겁게 끝나자 요압은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퇴각 했던 시리아는 유프라테스 동쪽을 지키던 병사들을 동원하여 다시 이스라엘을 치려 합니다(16절). 그 소식을 듣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전군을 소집하여 요단 강을 건너 시리아를 공격합니다(17절). 이번에도 다윗은 대승을 거둡니다(18절). 그 이후로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속국이 됩니다(19절).  

묵상:

구약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쟁의 신’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본문에 근거하여 ‘정당한 전쟁'(Just War) 혹은 ‘거룩한 전쟁'(Holy War)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을 위해 혹은 그분의 뜻을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이유라면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본문들을 읽을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싸움에 개입하고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지 온 우주의 창조주요 온 인류의 주권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고 죄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을 마지막 날에 미루어 놓으실 때 전쟁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갈등과 싸움과 투쟁은 인간사의 일상입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평화와 사랑과 하나됨이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원계획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평화와 사랑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로 인해 때로 갈등과 싸움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때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말려 든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싸운다”는 말은 어폐 중에도 최대의 어폐이지만, 죄악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5 responses to “역대지상 19장: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

  1. 인류의 역사는 인간들의 죄에 물든 본성으로 전쟁으로 얽혀매어 있습니다. 비록 수모를 당하더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해답은 주님임을 깨닫는 지혜를 원합니다. 사랑과 평화의 주님을 항상 기억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싸움을 피하는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에서는 앞에 가시는 주님을 따라 싸우는 용사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주님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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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장 합리적인 목적을 갖고 또한 하나님을 위한 최선의 전쟁도 공존과 화친보다는 인류를 훨신 많이 파괴해온 역사를 회상하며 특히 오늘날 살상이 저지러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화평과 공존의 은혜를 기도합니다, 어떤 구실도 전쟁을 정당화 할 수는 없으며 그 피해는 약자들이 감당해야하는 현실앞에서 강대국의 패권주의를 주님께서 심판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전쟁의 승리가 아닌 평화의 승리를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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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가 행하는 전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하는 전쟁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주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고한 백성과 군사들의 희생을 멈춰 주시옵소서. 또한 북한에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하여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김 정은 이의 미사일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고 국민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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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인생의 고비 고비 마다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전쟁의 연속이라서 자연이거나 타인이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상대로 man vs. nature, man vs. man, man vs himself – 인간을 남자 사람 ‘man’ 으로 쓰던 시대의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하는 전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이런 싸움이 차례 차례 순서를 지켜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에도 여러 곳에서 나라간 분쟁은 여전하더니 급기야 러시아 같은 최강대국이 이웃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야만 행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생존의 무게와 압력은 엄청나기만 하고 사람의 정신건강 mental health 의 취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 성질을 못 이겨” 속을 끓이는 차원을 넘어 분노와 편견에 꽁꽁 묶여 망상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악을 행하는 데까지로 넘어섰습니다. 젊은이가 마켓에서 유색인에게 총을 쏘아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어제도 한 교회에서 총기 범행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전쟁을 해야 했던 이유와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전쟁의 명분은 서로 같은 지 다른 지…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길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도 여전하고, 이해와 포용의 방법을 찾는 데 인색하고 조급한 것도 여전합니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저희를 버려 두지 마옵소서.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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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raceeunchong Avatar
    graceeunchong

    하루 한 시간! 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한동안 잊고지낸 사귐의 소리에 다시 접속하였습니다.ㅎ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방식을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과 더 접속하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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