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상 20장: 암몬과 불레셋과의 전투

해설:

19장에서 서술된 암몬-시리아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암몬 왕이 시작한 것인데 그로 인한 피해는 시리아가 입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몬 군사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퇴각하여 성안에 숨어 버립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난 후, 요압은 군사를 이끌로 암몬의 수도인 랍바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1절). 그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게 하는 죄를 저지릅니다(삼하 11장). 역대지 저자는 그 수치스러운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랍바에서 금관과 함께 많은 전리품들을 약탈합니다(2절). 그 후에 다윗은 암몬의 모든 성을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3절). 

불레셋은 다윗에 의해 점령 되었으나 저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골리앗이 속했던 거인족이 있어서 그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윗의 부하들은 그 반란을 진압 했습니다(4-8절). 사울의 군대가 골리앗에게 조롱 당할 때의 이스라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묵상:

다윗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오점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를 위험한 전투에 보내어 죽게 한 일입니다. 고대 왕정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 군주에게 그 정도는 죄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그것은 치명적인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열왕기 저자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시편에도 그 일로 인해 다윗이 드린 회개의 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51편). 그런데 역대지 저자는 그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역대지 저자가 다윗 왕을 이상적인 임금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역대지 저자가, 유다 백성이 다윗의 영광의 회복을 소망하고 용기를 내도록 이 책을 쓴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다 알고 있는 사건을 생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역대지 저자가 밧세바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용서받은 죄’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는 참담한 죄악을 저질렀지만 진정한 회개로써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시 51: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용서란 더 이상 그 죄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역대지 저자는 그 수치스러운 죄에 대해 한 번 기록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잊으셨으니 자신도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5 responses to “역대지상 20장: 암몬과 불레셋과의 전투”

  1. 믿기 어려운 주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삽니다. 과거의 모든 수치스러운 죄를 용서하실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않으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영혼에 품고 다시는 같은죄들을 짖지않기를 원합니다.모든것이 잘될때 주님을 잊고 흉칙한 죄를 범하는것을 깨닫고 지금의 고난을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용서와 구원의 십자가를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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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승전국의 기세와 위풍은 당당하겠지만 그 전투에서 희생당한 군사들과 민간인들의 피해와 패전국에서의 절망과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옥같은 상황인데도 다윗과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혜아리느라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입니다, 한 인간을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각 사람 하나 하나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기를 기억하여 주십시요, 지금 벌어지거있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종식시켜주시고 20세기의 제국주의가 다시 살아니는 일이 없게 패권국들을 감시하여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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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사전에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회개만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성령께서 내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 하시므로 죄에 대한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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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윗의 행적을 기록하는 데 있어 어떤 책에서는 밧세바의 일을 다루고 어떤 책에서는 건너 뛰는 것을 보니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생각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떤 사건을 역사로 그것도 한 국가의 역사로 인정하여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어 교훈으로 삼게 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고 협의하여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이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경으로 결정되기까지 많은 기도와 토론을거쳤을 것입니다. 사유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다, 당연하다, 원래 그랬다…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역대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밧세바와 다윗의 일은 의미 있는 신앙 유산입니다. 역사의 한 사건을 넘어 우리의 의식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8절 밖에 되지 않지만 이스라엘 군대의 막강함을 보여주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특히 블레셋과 세 번씩 맞붙었다는 기록을 보면 원한의 골이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 정세 속에도 오래된 갈등과 반목의 뿌리가 지뢰처럼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평화도 사랑도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잠시일 뿐입니다. ‘잠정적인’ 평화와 해결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머리 숙여야 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과 뜻을 내세워 서로를 제압하려는 현실이 부끄럽습니다. 회개할 일 뿐인 인생길에 내려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눈길 속에서 사랑이 보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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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내가 살아오며 받았던 은혜를 생각해본 아침입니다. 사람은 은혜를 잘 잊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은 뺀다고 쳐도, 일단 10개월을 어머니 배안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태어나도 금방 자립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몇년간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요. 부모와 가족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어서 살아온 것입니다. 가끔 남의 도움없이 자수성가하여 성공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뿌뜻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은혜로 도움으로 살아온것이지요. 여기에서 암몬 왕을 생각합니다. 선왕이 받은 은혜를 분명히 알았을텐데 그의 자식은 왜 그것을 잊었을까. 다윗이라는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낮추는 마음이 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질투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을수도 있고, 혹은 은혜를 상기시키고 주변 정치상황을 바르게 고하는 주위사함이 없었다는 때문인것 같기도 합니다.. 은혜를 잊는것은 너무나 쉽기때문에 좋은 친구나 스승을 두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둔한 나를 깨우쳐주는 귀한 사람들. 교회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깨닫기를 원하며 내 마음을 겸손히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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