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4장: 성구와 도구들을 만들다

해설:

솔로몬은 성전 안에 둘 성구들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놋제단은 번제를 드리는 곳입니다(1절). 제단 옆에는 제사장들의 정결례를 위해 사용할 거대한 물통을 만들어 놓습니다(2-3절). 그 물통은 놋으로 만든 열두 마리 황소가 등으로 떠받치게 했습니다(4-5절). 제단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대야를 다섯 개씩 만들어 놓아 번제물을 씻도록 했습니다(6절). 이 모든 성구들은 성전 바깥에 두었습니다.

성전 안에는 금으로 등잔대 열 개를 만들어 오른쪽과 왼쪽에 다섯 개씩 둡니다(7절). 하나님께 바칠 떡(진설병)을 놓는 상도 좌우에 각 다섯 개씩 두고, 금쟁반 백 개를 만들어 진설병을 놓는 데 사용하게 합니다(8절). 성전 바깥에는 제사장들을 위한 작은 뜰과 일반인들을 위한 뜰을 지정하고 문을 만들어 세웁니다(9-10절). 

솔로몬은 두로 사람 후람을 시켜서 성전 제사를 위해 사용할 도구들을 만들게 합니다(11-16절). 이 모든 작업은 요단 계곡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후람은 진흙으로 틀을 만들어 놋쇠를 부어 도구들을 만듭니다. 솔로몬은 그 모든 도구들을 넉넉하게 만들도록 지시합니다(17-18절). 이렇게 하여 성전의 외부 건물과 내부의 성구와 도구들이 완성됩니다.

묵상:

솔로몬은 성전 건물을 지을 때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반영하도록 최고급 자재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그는 성전 내부에 둘 성구와 도구들을 정성스럽게 만듭니다. 그 모든 것이 정갈하고 질서 있게 배치 되어 있어야만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 경내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것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위엄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다음, 성전은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을 무슬림들의 손에서 되찾아 재건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바울 사도는 믿는 이들의 몸(고전 6:19)과 믿는 이들의 공동체(고전 3:16-17)를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믿는 이들 안에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자신을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 빗대 말하면, 믿는 우리는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외면과 내면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어울리도록 늘 가꾸어야 합니다. 값비싼 것을 치장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여러분은 머리를 꾸미며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여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벧전 3:3-4)라고 말한 것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4장: 성구와 도구들을 만들다”

  1. 몸과 영혼괴 가정이 그리고 교회가 성전입니다. 겉모양과 내용이 참신하고 잘 정돈이 되어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종종 숨겨저있던 허물이 드러납니다. 십자가의 샘물같은 보혈로 항상 씼기를 원합니다. 금보다 더귀한 사랑으로 속 내용이 치장되고 정돈이 되는 성전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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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상의 물품으로 장식해 놓은 성전같이 이제는 내 안에 최선의 믿음으로 장식되기를 소망합니다, 외형보다는 내실에 충실하며 주님을 향한 마음에 성령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자의 직분을 잘 감당하수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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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예수그리도의 탄생으로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을 믿는 각 개인이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외부의 치장에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성령님을 모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갈 때 때마다 시간 마다 사건마다 말씀을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알려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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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걸어 다니는 사전’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답을 해 주는 서비스라도 하지만 ‘걸어 다니는 성전’은 어디에 쓸 수 있겠나… 생각해 봅니다. 성전은 곧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훈련과 연단을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지만 공동체와 연결되는 데 까지 가지 않으면 걸어 다니는 사전 만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어쩌면 지금 진행되는 한국의 선거가 보여 주는 씁쓸함에서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후보자 개인의 역량과 그가 속한 정당의 인격이 엇박자를 낼 때 유권자는 그저 불안할 뿐입니다. 미국의 정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총기 관련 법안이 상원에서 계류 중인 것도 의원 개인의 신념과 당의 입장이 맞지 않아 파생하는 여러 이유들 때문 임을 봅니다. 성전의 공동체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유토피아”는 어떤 갈등도 없는 곳, 나와 공동체가 seamless harmony 를 이루는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읽는 아침마다 생각이 나의 마음의 성전과 교회 공동체로 흘러가는 것을 느낍니다. 최근에 속해 있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입니다.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어서 라고 말할 수도 있고, 성격과 관점이 다른 사람끼리 부딪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안정을 깼다는 것이 미안합니다. 내 안의 성전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 같은 죄책감도 듭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반성과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부정과 순종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님,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시고 원하시는 마음의 자리로 찾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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