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5장: 언약궤를 옮기다

해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준비한 모든 보물과 기구를 성전 창고에 보관합니다(1절). 그는 다윗 성에 보관되어 있던 언약궤를 성전으로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2-3절).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언약궤와 모든 기구들을 옮겼고, 솔로몬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감사의 제물을 바칩니다(4-6절).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있는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두었습니다(7-9절).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과 만나 한 오멜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출 16:32-34)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자는 솔로몬 당시에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 밖에 없었다고 기록합니다(10절). 언약궤가 불레셋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 없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때 제사장들은 순번에 관계 없이 모두 성전에 모여 있었고, 찬양을 맡은 이들도 함께 했습니다(11-12절). 그들이 성전 안에서 모든 예식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립니다(13절). 그 때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들어 찹니다. 구름이 너무도 진하여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14절). 

묵상:

성전에 구름이 가득 들어찬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셨고 앞으로도 함께 하시겠다는 징표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에 가득 찼던 구름(출 40:34)을 기억하고 또한 성전을 가득 채웠던 구름을 기억하면서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특별한 사건을 통해 “나 여기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십니다. 신앙 체험이 그것이고, 치유의 이적이 그것이며, 신비한 사건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헐적으로 그런 일을 허락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일상’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그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의 자리를 찾고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섬기는 자리로 나갑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더 자주, 더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그 마음으로 눈을 뜨고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처세술입니다. 

8 responses to “역대지하 5장: 언약궤를 옮기다”

  1. 땅 끝까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잊고 멋대로 살아온 가련한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감사 하지않고 무덤덤 하게 살아 왔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를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헛된것을 구하기보다 주님만 기리고 주님을 닮아가고 이웃과함께 순종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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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우듯 우리의 삶속에도 주님의 성령이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어디에 어떤 순간에 있드라도 주님의 영광이 자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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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채웠듯이 우리의 삶속에서도 성령이 가득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내 일상에 자욱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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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 모셔진 여호와의 언약궤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만 남았다. 광야에서 자란 나무로 만들어졌고 바위를 깨어 만들어진 돌판에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눈으로 보이도록 나타난 언약의 표시였다. 마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 같이 언약궤가 주는 의미는 생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남기신 것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있도록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생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보이는 예수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있도록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하늘로 승천하셨지만 주님께서 가르치신 제자들을 통해 성경이 쓰여지고 그 성경을 보는 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있도록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시록에 보면 천국에도 언약궤가 있는 것같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이 땅에 있었던 언약궤가 천국으로 옮겨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율법의 한 획이 없어지는 것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쉽다고 하신 말씀같이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말씀은 영원한 것임을 언약궤를 통해 다시 기억하게 된다.

      솔로몬이 완공한 성전에 모셔진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징하는 언약궤나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진 우리가 보는 성경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믿음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그 예수를 나의 주로 모시겠다는 약속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른다. 그런 면에서 믿음은 약속의 결실이기도 한 것 같다.

      주님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나의 믿음을 주목해 본다. 나의 믿음의 삶이 그 약속에서 벗어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주님을 뒷전으로 밀고 나를 나타난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주님을 목표로 삼지 못하고 벗어난 모든 것을 죄라고 부른다. 뜨겁게 주님을 체험한 것이 벌써 사십 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초신자와 같은 나의 신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 한 번 나의 믿음을 추스려 본다. 그리고 진실된 에배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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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육신을 위해 매일 밥을 먹듯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묵상 함으로 잠들지 않고 힘을 얻어 하나님께서 함께 항상 함께하심을 경험 합니다.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말씀 묵상을 멈추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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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과 만나 한 오멜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지만, 블레셋 사람들로 인해서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것들은 정말 귀중하고 거룩한 것들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유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중하고 거룩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통한 숨은 의도, 즉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귀중하고 거룩한 것들이 유한하기 때문에 때로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숨은 의도인 하나님의 거룩함, 정결함을 찾아내고, 무한한 하나님을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을 표현하는 모든 유한한 것들을 우상시 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통해서 표현되는 하나님의 속성과 나타나심을 생각하며 무한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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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성전이 완성되자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모셔 들이는 거국적인 행사가 남았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길에 남자들이 가득한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솔로몬 왕 앞에 다 모였습니다. 레위인들이 궤를 어깨에 메고 옮깁니다. 회막과 그 안의 거룩한 물건들을 다 옮깁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소를 제물로 바칩니다. 시온의 다윗 성에 있던 언약궤가 이제 성전 안의 지성소에, 그룹의 날개 아래에 놓여집니다. 음악이 흐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노래하는 사람이 다 한 사람처럼 소리를 냅니다 (13절).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여호와께 헌신합니다.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이것도 이적 같이 보입니다. 온 백성이 한 생각, 한 목표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이적으로 느껴집니다. 현대인의 종교는 스포츠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스포츠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월드컵 때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 응원하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수퍼볼, 월드 시리즈, 올림픽…하나 만을 생각하고 염원하는 ‘예배’의 정성이 들어가는 현장입니다. 성전 가득 구름이 덮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입니다. 찬양을 받으신 하나님의 답입니다. 아주 아주 가끔 신비한 일을 보게 하심으로 땅만 보고 살던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새로운 시간을 맞았습니다. 감사가 있는 하루, 사랑과 기쁨이 가득 찬 성전의 하루 같은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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