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6장: 성전 봉헌 기도

해설:

온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제사를 드린 후, 솔로몬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주님께서 영원히 계실 곳으로 성전을 지어 바쳤다고 말씀 드립니다(1-2절). 그런 다음, 그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얼굴을 돌리고 기도를 이어 갑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회고 하면서 자신을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3-11절). 

솔로몬은 몸을 돌려 제단을 바라보고 무릎 꿇은 다음, 손을 들고 기도를 계속 이어 갑니다(12-13절).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언급 하면서 다윗을 통해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 약속은 주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왕위가 다윗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14-17절). 그는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성전에 모신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인정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기로 약속하신 곳입니다. 따라서 자신과 백성이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18-21절).

이어서 솔로몬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기도를 이어 갑니다. 이웃에게 죄를 짓고 성전에서 거짓 맹세하는 경우(22-23절),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적에게 패배하여 성전을 바라보면서 회개하는 경우(24-25절),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자연 재해를 당했을 때 회개하며 기도하는 경우(26-27절), 여러 가지 재앙을 당하여 성전을 향해 회개하고 구원을 호소하는 경우(28-31절), 이방인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경우(32-33절), 전쟁터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경우(34-35절) 그리고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타국에 끌려가 그곳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경우(36-39절),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전에서 혹은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청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40-42절).

묵상:

다니엘은 바빌로니아 땅에 살면서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 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 했습니다(단 6:10). 마음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기도 하고 몸이 마음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기도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무슬림들이 하루에 세 번 메카 방향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신을 향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하나님을 보게 하는 가시적인 상징물임을 잊지 않습니다. 성전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불행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망각하고 성전 자체를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려는 상징물이었는데, 그 상징을 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불가의 비유를 사용 하자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잊혀지고 성전 제사만 화려 해졌습니다.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진실한 회개가 선행 되어야 했는데, 회개하는 것은 망각하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기도는 주술이 되어 버리고 그들의 제사는 우상 숭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버림 받았던 이유입니다.

“The heart of the matter is the matter of the heart”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몸도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 없는 운명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6 responses to “역대지하 6장: 성전 봉헌 기도”

  1. 몸과 영혼이 성전입니다, 가정이 성전입니다. 창조하신 온 세상이 성전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겉 모양보다 내용이 주님께 영광 들이고, 주님의 이름을 길이는 찬양과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모든 행함과 삶이 주님을 찬양하며 또한 기도 응답받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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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된 취지를 이해 하게하는 말씀을 통해 이제는 가시적인 성전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신실한 기도가 회개와함께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되 찾으려했던 예루살렘은 끝내 이스라엘의 손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이 산산히 희터지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를보며 하나님의 실제는 구름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 속에 임재하심을 깨달게 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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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나라를 위한 간구만 구하는 듯 합니다. 내 삶에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나의 영광과 나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와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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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던 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모두 평정하고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면 솔로몬의 시대는 성전 봉헌을 시작으로 통일 이스라엘이 번영했던 시대였다. 다윗이 사십 년을 통치했고 솔로몬도 사십 년을 왕으로 지냈던 이스라엘은 르호보암 새대에 분열했고 이스라엘 역사에 찬란했던 번영은 백 년을 지나지 못했던 것 같다.

    도덕성이 무너진 번영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번영 신앙의 문제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아무리 화려한 집이라 할지라도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진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환난을 인내로 견디고 연단된 믿음이 없이 축복의 주인이신 주님보다 복음의 부산물 밖에 되지 못하는 번영을 기대하는 신앙은 장구할 수 없음을 역대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 12:5)

    세상의 생각과 역행하는 것이 신앙이다. 세상이 타락할지라도 거룩할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 세상은 타락했어도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지켜온 세상이다. 어떤 분들은 목이 잘리며 복음을 전했고 어떤 이들은 불위를 걸으며 신앙을 지켰고 멸시하고 미워하는 상대를 사랑하며 베려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으로 다음세대에 신앙적 도전을 주는 것이 오늘을 살고있는 신앙인들의 마땅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소금과 같이 나를 녹여 버리고 주님의 맛을 내는 삶과 선한 행실을 통한 세상에 빛이 되는 삶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으며 육신적으로 피곤치 않을 수 있을까. 에수를 믿으면 잘먹고 잘살며 모든 일이 형통할뿐아니라 자식들도 대대로 축복과 번영을 누린다는 것이 복음이 될 수 있을까. 번영 신앙의 헛점일 뿐이다. 오히려 적게 가진 자는 주님 안에 감사하는 삶이 복음이고 많이 가진 자는없는 자와 나누는 것이 복음이 아닐까.

    솔로몬은 “내 율법대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 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16절) 하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으로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잊으실까. 약속을 잊는 자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신앙이 피곤하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세상을 역행하는 신앙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내가 하나님께 약속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주님을 따르는 진실된 신앙이 되기를 이아침 주님께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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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 눈에 보이는 성전 만을 바라보게 마시고 그 곳에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시옵소서.또한 성령님께서 제 가슴속에 왕으로 요셔서 항상 어느 때를 막론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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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솔로몬의 기도가 참 지혜로왔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며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판단해 달라 (22절)고 청합니다. 전쟁에서 지더라도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비를 내리시지 않아도 찬양하며 기도할 때 들어주시기를, 전염병이나 해충병, 적의 공격이나 무슨 병이든 백성 사이에 돌 때 판단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먼 땅의 이방인이 주의 능력을 듣고 기도하러 오면, 또 주의 백성이 남의 나라에서 살다가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세상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테지만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셔서 이 성전에 오시고 이곳에 편히 쉬시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처음 기도에는 간절함이 들어 있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회개하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기도하는 이방인 까지 헤아리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성전을 봉헌할 때 드린 기도가 삶과 매치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 하는 기도와 이웃 앞에서 하는 말이 매치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아직 기도로 빚어지지 않은 생각까지 아시는 주님, 내 안에 소망을 두시고 그 소망을 따라 살도록 도와 주소서.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기도는 아닐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올리는 감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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