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11장: 남과 북으로 나뉘다

해설:

예루살렘으로 도피한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모든 장정들을 동원하여 자신에게 반역한 북쪽 지파들을 치려 합니다(1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동족상잔의 전쟁을 하지 말도록 지시하십니다. 르호보암과 지도자들은 그 말에 순종 합니다(2-4절).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의 왕으로 통치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영토를 지키기 위해 동서남북의 국경에 요새를 세우고 무기와 식량을 넉넉히 비축해 둡니다(5-12절).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지파들 사이에 살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모든 재산을 버리고 남 유다로 내려 옵니다. 여로보암이 남 왕국을 경계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했고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숫염소와 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했기 때문입니다(13-15절).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남하할 때 그들을 따라 내려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원했던 사람들입니다(16절). 이들은 르호보암에게 충성하여 남 왕국 유다를 더 강성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신속하게 다윗과 솔로몬의 길에서 떠납니다(18절).

이어서 저자는 르호보암의 가족 사항을 소개합니다. 그는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두었고 그 사이에서 수 많은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아내들 중에 특별히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아꼈는데, 그에게서 얻은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삼습니다. 고대 왕국에서는 왕위 승계 기간에 왕자의 난이 흔히 일어났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왕자들을 각 성에 흩어져 보내어 편안하게 살도록 배려합니다(19-23절).

묵상:

북쪽 열 지파의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에 정통성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좌에 오른 후 첫 번째 조치로 예루살렘 여행을 금지 합니다. 북쪽 지파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오가는 한, 자신은 ‘찬탈자’ 혹은 ‘비정통’의 오명을 벗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쪽 지파들 사이에 흩어져 살고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억압 했고, 중요한 지역마다 산당을 세우고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루살렘으로 망명합니다. 북쪽 지파 사람들 중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토지와 집과 재산을 버려 두고 남쪽으로 내려 옵니다.

이 장면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소수 종파 신도라는 이유로 박해 받던 청교도들이 종교적인 자유를 위해 조국과 가족을 떠나 미국 땅으로 이주 했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로 인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남쪽으로 이주 했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보다 신앙적인 자유가 더 중요했습니다. 빈 손이 될지언정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단과 선택으로 인해 그들은 많은 희생과 고초를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희생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과 사랑이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것인지, 하나님을 얻으면 다 얻는 것이고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얼마나 살아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5 responses to “역대지하 11장: 남과 북으로 나뉘다”

  1. 조국 해방 직후에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삼팔선을 넘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을 직히기위해 떠나지 않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거나 변절을 했습니다. 숨어있는 북한의 성도들을 위해 이웃과함께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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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스라엘에서 남과 북이 갈라지며 다투며 질시할 때 북 10지파에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지파가 남 유다로 피신해온 역사를 보며 우리의 해방 전후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남쪽에서 이념대립과 신탁통치의 찬반으로 혼란기에 있을 때 일사분란하게 통치체제를 갖추며 기독교인들, 지성인들 또 지주들을 탄압하며 무상몰수와 무상 분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할 때 그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동포들을 기억나게 합니다, 해방당시 민족의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인해 희생당한 우리 조국이 가슴을 아려옵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통치로 오는 일반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며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서방의 지도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 그들에게 주님의 지혜와 평화를 주시어 더 이상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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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2-6-9
    북이스라엘은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해 남쪽 벧엘과 북쪽 단에 산당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섬기게 했다. 그들은 후에도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취급하고 선지자들을 통해 쓰여진 말씀은 성경에서 제거했다. 벡성들이 선지자들의 글을 보면 북이스라엘 정권의 정통성이 정당치 못함이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대에 하나님을 향한 선한 뜻을 품고 살았던 자들은 레위 사람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고 삼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다고 했다. 삼년이라고 기한을 기록한 것을 보면 그들 모두가 남유다로 이주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절기 때마다 가족들과 제사에 드릴 짐승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이 요즘같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과 같이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시대에 그들의 열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열정도 식었던 것 같다. 벧엘과 단에 새롭게 만들어진 산당이 점점 더 편해졌다는 것이다. 멎지게 만들어진 금송아지와 그곳에서의 예배의식은 먼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타협을 가능케 했을 것 같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퉁이 돌로 표현하셨다. 모퉁이 돌로부터 돌이 세워지고 건축물이 올라갈 때 견고한 집이나 건물이 세워진다. 모퉁이 돌이 없는 건축물은 높이 올릴 수도 없고 견고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믿음의 삶을 살면서 타락하고 싶고 변질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북이스라엘의 무리가 삼년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했다고 기록되었는데 삼년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루살렘 가까이 지어진 벧엘 산당도 북쪽에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 지어졌던 단 산당도 하나님을 위한 곳이 아닌 사람을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편하게 신앙생활 하라는 것이 아니었나.

    코비드로 인해 교회마다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영상예배가 출장을 가거나 몸이 아픈 분들에게는 유익할 수 있겠지만 편하게 믿으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다. 나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하나님께서 왜 모르실까. 모든 것이 편한 때를 살아간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편한 신앙생활이 나를 타락시키고 변질되게 하는 원인임을 생각하게 한다.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은 몸을 편하게 할 수 있으나 영을 피페케 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마음에 교훈을 삼는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했던 다윗의 날마다의 고백이 나의 삶에도 날마다 계속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이아침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늘 부지런한 믿음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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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조국의 6.25 전쟁으로 발생했던 분단 상황과 같은 역사 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북한과 남한의 차이점이 지금은 극명함을 실감합니다. 북한은 적화 통일의 키가 원자폭탄 인줄 알고 원자폭탄 개발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어 경제는 물론 국민에게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독재 폐쇄 정부로 존재하고 있고 남한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지만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하나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인식 과 종교의 자유로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 집단의 발생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러한 조국의 어려움과 미국을 위해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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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떤 사회도 분열을 경험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크고 작은 균열이 일어나 쪼개져 나오기도 하고 그렇게 파생된 작은 모임들이 수시로 큰 단체에 흡수되기도 합니다. 르호보암의 집권 초기에 남과 북으로 나라가 두동강이 나고, 르호보암이 머무는 예루살렘은 그에게 반대하는 열 지파의 공격에 대비해 수비성을 쌓고 식량을 비축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르호보암에게 왔다는 것과 결혼을 통해 르호보암은 많은 아들 딸을 얻어 모든 요새를 아들들에게 맡겨 다스리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 년 동안 르호보암은 레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강하게 세웠습니다. 아들들을 요새에 보내 군주로 지내게 한 것은 정치적인 감각이 좋았음을 보여줍니다. 후계자를 일찌감치 정해 놓고 다른 아들들로부터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먹을 양식과 아내들을 넉넉하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예배 (제사)의 안정과 기득권의 보장을 통한 선정입니다. 왕국이 분열되었다는 것은 우리편 (us)과 적 (them)의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조나단 색스 랍비는 개체 생존을 위한 본능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희생이 협력하여 인류가 살아남고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이 종교의 덕분이라고 봅니다. “Homo sapiens became Home religiosus.” 개인적인 삶에도 나타납니다.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예배) 공동체를 위한 삶의 가치에 눈을 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지도자는 이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로서 이 부분에 취약했음을 자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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