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12장: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다

해설:

북쪽 열한 지파를 포기한 다음, 르호보암은 자신에게 속한 영토를 견고하게 만들고 왕권을 안정 시킵니다. 권세가 커가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은 점차로 하나님에게서 떠납니다. 하나님께 대한 임금의 불성실은 백성들의 믿음에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1절). 

그러는 중에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에 이집트 왕 시삭이 대군을 몰고 올라 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진군해 옵니다(2-4절). 시삭 왕의 기세에 눌려 르호보암과 대신들이 한 곳에 모여 숙의 하며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언자 스마야가 찾아 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시삭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5절). 그 말을 듣고 왕과 대신들은 하나님의 징계가 마땅하다고 응답합니다(6절). 하나님은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완전히 멸망 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7-8절). 

그 말씀 대로, 시삭은 예루살렘 성을 약탈하고 유다를 속국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유다의 주권은 그대로 유지 되었습니다(9-12절).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유다를 통치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이집트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여로보암과 자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유다 역사에서 악한 왕으로 기억 되었지만, 죽어서 다윗 성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렸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왕위를 잇습니다(13-16절).

묵상:    

저자는 르호보암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고 악을 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불신앙과 불성실은 백성에게 영향을 미쳐서 국력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이집트 왕 시삭에게 빌미를 주었고, 결국 거대한 국난을 만납니다. 예언자 스마야는 르호보암과 백성의 불신앙과 불성실을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삭의 의도를 허락 하신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이 질책 앞에서 르호보암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저자는 오늘 본문에서 네 번(6절, 7절 2회, 12절)이나 “잘못을 뉘우쳤다”(개역개정 “스스로 겸비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이 “가까스로 구원을 받게”(7절)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에 오염되어 있어서 그냥 두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에 비례하여 교만도 증가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는 생각이 교만의 출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겸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낮아집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상황을 바로 인식하게 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 실은 자신을 높이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5 responses to “역대지하 12장: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다”

  1. 허락하신 축복이 어디부터 온것인지 항상 기억하고 겸손히 주님만 사랑하는 열정을 원합니다. 종종 너머 지더라도 즉시 성찰하고 반성하며 주님앞에서 바로서고 새로위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만 기리고 주님사랑,이웃사랑하며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2. 르호보암이 왕위가 튼튼해지자 거만하고 교만해져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가 하나님의 눈밖에 나면서 유다에 생기는 불행을 보며 우리가 잘 나갈 때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지침을 지켜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너희는 서있을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조언을 되색여 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는 주님께 매달려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일이 잘 풀려 잘 나가게 되면 마치 자기가 성취한 양 교만하게되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간 본성을 거울삼아 평안하고 부유 할 때 일 수록 더 깨어 기도하는 성숙된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Like

  3. 하나님은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라는 십계명(출20:2) 중 첫 번째 계명을 범했더라도 진심으로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내리실 진노를 멈추시고 유보하심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한 교만함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영의 양식, 말씀을 먹지 않고 있을 때 그 것들이 표출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말씀을 먹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때마다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Like

  4.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르로보함이 율법을 버렸고 온 이스라엘이 본받았다고 했다. 스마야 선지자는 율법을 버린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표현했다.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긴 것과는 달리 남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아직까지는 제사에 우상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은 불씨가 큰 숲을 태우는 것 같이 죄는 늘 작은 틈을 비집고 찾아오는것 같다. 자신의 세력이 강하게 느껴질 때 르호보함 마음에 교만이 찾았고 곧 율법을 버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때 찾았던 교만의 불씨가 르호보암을 찾았을 뿐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찾았고 지금 우리의 마음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다.

    신앙이 주님을 받아 들인 것이라면 신앙생활은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몸은 하나인데 주인이 둘이다. 나의 영은 주님과 함께 하는데 나의 자아는 육신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주인으로 살아온 삶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와 나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이기지 못함을 늘 지고나면 깨닫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지 못할 때 나는 나에게 진다. 겸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님께서 통치하시도록 주님께 의지하는 삶이다. 나의 세력이 강할지라도 나의 세력이 내것이 아님을 깨닫는 삶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믿음도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내 마음에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이제부터 나를 내려놓겠다는 결단이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는 고백의 시작이 겸비한 마음이었고 그 행동이 율법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조석으로 바뀌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주님께서 통치하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삶에 늘 시삭이라는 시험이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두말한 것 없이 내가 주인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이 겸비한 자는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는 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날마다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사랑하실거야 하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불행하게 하는지 모른다. 오늘도 주님께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께서 통치하시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드린다.

    Like

  5.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언약 covenant 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어느 왕은 다윗의 길을 따라 행했다, 어느 왕은 그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 하는 뜻을 약속을 지켰다/어겼다, 관계를 유지했다/깼다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하나님도 약속 안에서 백성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방치하는 무관심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행동에 따라 마음을 바꾸기도 하십니다. 본문도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바꾸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여호와는 왕과 지도자가 뉘우치는 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결정적인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그들은 나를 섬기는 것과 다른 나라의 왕들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8절).” 왕들의 종으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관계가 있다’는 뜻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일방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로 사는 것은 서로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에도 불편이나 폐를 끼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다른 운전자의 행동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무슨 관계를 만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시공을 거치는 중에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 부부, 친구처럼 아주 중요하고 친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세상의 권력과 법칙을 섬기는 것과 다르다는 진실을 깨닫지 않으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자유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집착과 소유에 종살이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약속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세상살이의 근심으로 빠지는 마음을 추스리고 주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주님, 주님의 자비에 의지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