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15장: 언약을 새롭게 하다

해설:

에티오피아와의 전면전이 끝난 후, 오뎃의 아들 아사랴 예언자가 아사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절). 먼저 그는 하나님을 찾기를 멈추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그들을 떠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절). 그러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예로 듭니다. 여로보암의 정책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로 인해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온갖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3-6절). 아사랴는 아사 왕과 유다 백성에게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희생에는 반드시 상급이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이 말씀을 듣고 아사는 또 한 번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이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땅에서 산당을 제거한 적이 있습니다(14:3).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다시 산당이 지어졌습니다. 우상 숭배의 습성은 인간 본성에 깊이 배어 있어서 잠시만 놓아 두면 독버섯처럼 불어납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서도 산당과 우상을 제거했고 성전의 제단을 보수합니다(8절). 

그런 다음 그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북쪽에서 망명한 다른 지파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언약을 맺습니다(9-12절).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이 없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을 죽이기로 결정하고(13절) 이 언약에 충성 하기로 맹세합니다(14절). 그 종교 개혁으로 인해 유다는 평안과 번영을 누립니다(15절). 아사 왕은 할머니가 섬기던 우상까지 제거하는 단호함을 보입니다(16절).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아사의 마음은 한결 같았고, 그의 통치 35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었습니다(17-18절).

묵상:

아사랴 예언자가 전한 메시지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옛 언약은 조건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행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하십니다. 순종에는 축복으로 응하고, 불순종에는 징계로 응하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을 통해 주신 언약의 핵심입니다. 아사랴의 예언을 듣고 아사 왕은 언약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백성에게 태평 성대를 안겨 줍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는 결국 언약의 조건을 지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참담하게 심판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한 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에 대해 예고 하십니다(렘 31:31-40). 모세를 통해 맺은 언약이 이스라엘의 불성실로 인해 파기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통해 조건 없이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졌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징표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등을 돌리고 우리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무서워서 그분을 섬기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항복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이유는 축복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15장: 언약을 새롭게 하다”

  1.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토록 귀한 은혜와 사랑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세상의 부귀영화와 평강이 허락되지 않을지라도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에 질병과 전쟁과 굶주림과 핍박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Shalom 을 구하는 기도를 이웃과 함께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2. 아사 통치 당시 유다와 벤냐민이 주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평화를 누렸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내리신 새로운 언약인 예수님을 받아들이며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언행에 관계없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여 내 언행에 매일같이 새롭게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새로운 변화를 통해 이웃과의 사랑이 더 돈독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새언약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주님이 말씀이 온 세상에 널리널리 퍼져나가기를 기원합니다.

    Like

  3. 인간은 죄를 안고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너를 보호해주겠다고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지 만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므로 회초리를 맞고 죽임까지 당하는 어리석은 백성을 살리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사랑 안에 머물러있으면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오늘 하루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Like

  4. “온 나라에 재앙이 가득했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 성이 다른 성을 멸망시켰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갖 재앙으로 그들을 괴롭히셨기 때문이오. (5절, 6절)” 이 말씀이 걸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순종하며 살면 “사방에 쉼(15절)” 을 주실 것이고 주를 버리면 주께서도 버리실 것이라는 아사랴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상반되는 두 측면 즉 사랑과 공의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악의 기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신 (단일신)의 틀로는 악의 존재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불순종하는 인간이라서 치뤄야 하는 재앙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설명이 초라하게 들립니다. 사랑과 공의,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이원적인 개념조차도 서로에게서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는 상호의존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하게 몰아내고 오직 그 자체로만 충만한 때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엄격한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한 번에 이 두 가지를 같이 믿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잘못해서 벌을 받는 백성의 역사가 길게, 많이 여러번 나옵니다. 조나단 색스는 성경을 국가적 자아비판 서적 (national literature of self-criticism) 이라고 부릅니다. 정의의 하나님과 잘못한 백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괴롭히시는’ 이유는 인간의 잘못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 같습니다. 백성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사랴의 메시지가 흡족(?)하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 이런 것들일 것입니다. 이래서 교회가, 신학이, 인생이 복잡하고 어렵다 “messy church,” “messy theology”고 말하나봅니다. 세상이 지금 겪는 곤란과 아픔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여기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죄를 그냥 두고 보시지 않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묵상하려니 우울함이 더욱 커집니다. 쉼을 주소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