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19장: 사법 정의를 세우다

해설:

아합 왕과 연합하여 시리아를 공격 했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후, 예언자 예후가 여호사밧 왕을 찾아옵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불의한 자를 도운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책망합니다(1-2절). 동시에 그는 우상 숭배를 말소한 노력에 대해 왕을 칭찬합니다(3절). 

그 이후로 여호사밧은 유다의 사법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백성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을 직접 시찰 하곤 했습니다(4절). 또한 그는 요새화된 성읍에 재판관들을 세우고 일을 처리할 때 의롭게, 치우침 없이 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라고 명령합니다(5-7절). 

그는 또한 수도 예루살렘에 레위인과 제사장과 족장의 지도자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재판관으로 임명하여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송사를 처리하게 합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상고 법원을 예루살렘에 둔 것입니다(8-10절). 예루살렘의 상고 법원은 종교법과 시민법을 나누어 처리 했습니다. 그것에 더하여 여호사밧은 대제사장 아마랴를 종교법을 관장하는 대법관으로, 스바댜를 시민법을 관장하는 대법관으로 임명합니다(11절). 이렇게 사법 제도를 정비한 후, 여호사밧은 그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고 공의를 따라 재판하라고 당부합니다. 

묵상:

법은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약자들이 불의를 당할 때 그들이 잃어버린 정의를 바로 잡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법을 다루는 기관을 ‘the Department of Justice’라고 부릅니다. 정부 안에 정의를 다루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은 국민으로서 매우 안심되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든지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악한 일을 도모 하려는 사람에게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정부에서 정의의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놓고 악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법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방법원, 상고법원, 대법원 같은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고, 엄격한 기준으로 재판관을 뽑아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사법 정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습니다. 송사에 걸려 재판정에 서는 것이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진실과 정의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옳은 사람이 정의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고, 미국에서는 “The color of justice is green”(정의의 색깔은 달러 지폐의 색깔과 같다)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여호사밧이 오늘의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없는 사법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재판관들에게 주님만을 두려워 하라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치우치지 말라고, 오직 공의만을 이루도록 힘쓰라고 신신당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재판관들에게 준 그의 당부의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울림이 큽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19장: 사법 정의를 세우다”

  1.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떠나온 조국과 온세상의 군주들 부터 민초들 까지 모든 백성이 공의의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앞에서 바로서고 모든분야에서 공의가 이뤄지기를 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오실때에 이뤄질줄 믿습니다.억울한 자들을 찾아 공의의 주님을 전하고 위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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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법과 율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내려준 질서였지만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권력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백성들의 질서를 유지하기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 근본의 죄악을 생각하게 됩니다, 창조의 질서와 새로주신 계명을 되색이며 이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자연의 섭리와 기본 질서를 따라 이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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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호사밧 왕은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백성이 조상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4절) 했습니다. 그래서 요새마다 재판관들을 세웠습니다 (5절).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표현은 양심적이고 선량한 사람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법에 의지할 일이 필요 없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법에 물을 일이 없는 세상, 법이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이상과 더욱 멀어진 느낌입니다. 법이 더 꼬이게 하거나, 또 다른 억울함을 빚어내지나 말았으면 합니다. 시니컬해져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여호사밧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지도자 안에서 재판관을 세웠습니다. 백성이 성숙하고 현명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 일어날 많은 질문과 분쟁을 해소하는 일을 재판관들에게 맡겼습니다. 은혜로 사는 우리지만 율법의 가이드를 받아야 하는 모습과 닮아 보입니다. 무한 자유를 원하면서도 무한 책임은 감당할 수 없는 모순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부족함을 뛰어 넘는 주님의 은혜로 채워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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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관들은 동족사이나 동족과 외국인
    사이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재판하여야 하고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없는 자나 있는자들을 차별하지 말고 공평하게 판결해야 합니다(신명기 1:16~17). 그러나 법을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자들도 있고. 또한 권력자와 돈 많은 자들이 판사들을 매수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즉 무전 유죄, 유전 무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권력과 금전에 눈이 멀어 법과 눈물로 정의롭게 판결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법관과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정의롭고 눈물이 있는 판결을 하고 법을 만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한 정치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 온 인류가 법 앞에서 정의롭고 공평한 판결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법관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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