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아합 왕과 연합하여 시리아를 공격 했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후, 예언자 예후가 여호사밧 왕을 찾아옵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불의한 자를 도운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책망합니다(1-2절). 동시에 그는 우상 숭배를 말소한 노력에 대해 왕을 칭찬합니다(3절).
그 이후로 여호사밧은 유다의 사법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백성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을 직접 시찰 하곤 했습니다(4절). 또한 그는 요새화된 성읍에 재판관들을 세우고 일을 처리할 때 의롭게, 치우침 없이 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라고 명령합니다(5-7절).
그는 또한 수도 예루살렘에 레위인과 제사장과 족장의 지도자들 가운데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재판관으로 임명하여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송사를 처리하게 합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상고 법원을 예루살렘에 둔 것입니다(8-10절). 예루살렘의 상고 법원은 종교법과 시민법을 나누어 처리 했습니다. 그것에 더하여 여호사밧은 대제사장 아마랴를 종교법을 관장하는 대법관으로, 스바댜를 시민법을 관장하는 대법관으로 임명합니다(11절). 이렇게 사법 제도를 정비한 후, 여호사밧은 그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하고 공의를 따라 재판하라고 당부합니다.
묵상:
법은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약자들이 불의를 당할 때 그들이 잃어버린 정의를 바로 잡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법을 다루는 기관을 ‘the Department of Justice’라고 부릅니다. 정부 안에 정의를 다루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은 국민으로서 매우 안심되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든지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악한 일을 도모 하려는 사람에게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정부에서 정의의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놓고 악을 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법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지방법원, 상고법원, 대법원 같은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고, 엄격한 기준으로 재판관을 뽑아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사법 정의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습니다. 송사에 걸려 재판정에 서는 것이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진실과 정의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옳은 사람이 정의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고, 미국에서는 “The color of justice is green”(정의의 색깔은 달러 지폐의 색깔과 같다)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여호사밧이 오늘의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없는 사법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재판관들에게 주님만을 두려워 하라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치우치지 말라고, 오직 공의만을 이루도록 힘쓰라고 신신당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재판관들에게 준 그의 당부의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울림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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