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21장: 여호람의 불행의 씨앗

해설:

여호사밧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는 여호람을 세자로 세우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후한 재물과 요새화 된 성읍을 주어 다스리게 합니다(1-3절). 하지만 여호람은 왕권을 쥐자마자 후환을 없애기 위해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협조하지 않는 고관들을 숙정합니다(4절). 그는 32세에 왕위에 올라 8년 동안 통치하는데(5절), 저자는 그가 “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6절)고 평가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로보암의 정신적인 유산을 이어갔습니다.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간 이유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명시합니다. 여호람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셔서 다윗 왕가를 멸망 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7절).

그가 통치하는 동안 ‘엔게디 대첩'(20장)을 통해 속국으로 만든 에돔이 반란을 꾀합니다. 여호람은 에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 했으나 오히려 포위 당하여 겨우 몸만 빠져 나왔습니다. 에돔이 반란에 성공하여 유다로부터 독립하자 립나 성읍도 반란을 일으킵니다(8-10절). 유다의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진 것입니다. 저자는, 그 모든 일이 여호람이 주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여호람은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지도록 만듭니다(11절). 

이 즈음에 예언자 엘리야가 편지를 보내어 여호람이 받을 심판에 대해 알립니다(12-15절). 얼마 후에 엘리야의 예언은 아라비아 사람들의 공격으로 실현 됩니다. 이 공격으로 유다는 심한 타격을 받고 궁궐까지 약탈 당합니다. 그들은 막내 왕자 아하시야 외의 모든 왕자들을 잡아갑니다(16-17절). 전쟁의 상처로부터 회복되기도 전에 여호람은 불치의 병을 얻고 두 해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다윗 성에 묻히기는 했으나 왕실 묘지에는 들지 못했고, 백성 중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18-20절).

묵상:

여호람은 남 왕국 유다의 네 번째 왕으로서 악하고 불행한 최초의 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20절)는 평가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의 철저한 실패를 의미합니다. 저자는 그 불행의 원인이 아합의 딸과 결혼한 것에 있다고 지적합니다(6절). 그렇다면 불행의 씨앗은 정략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그 아버지 여호사밧에게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합이 얼마나 불의하고 악한지를 알면서도 정치적인 실리를 위해 동맹을 맺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결정으로 인해 전쟁에 연루 되었고 전사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그의 아들에게 일어납니다. 아내의 영향에 휘둘린 여호람은 다윗의 길을 떠나 여로보암의 길로 갔습니다. 그로 인해 유다 백성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고 국력은 급속히 쇠약해지고 그는 불치의 병에 걸려 8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여호사밧과 여호람의 이야기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고후 6:14) 이 말씀은 믿는 이들이 세상에서 빠져 나와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그 안에 모여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불신자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등지고 불의를 행하여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은 삶을 공유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결혼 관계, 친구 관계 혹은 공동체 관계를 염두에 둔 말입니다. 불의를 탐하는 사람과 친밀하게 삶을 공유하면,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부지불식 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입게 됩니다. 작은 구멍이 거대한 방파제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 사귐이 결국 믿음의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우리가 이 세상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래야만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만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해 섬길 수 있습니다. 

5 responses to “역대지하 21장: 여호람의 불행의 씨앗”

  1.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전수하지 못했습니다. 산당의 우상 즉 세상의 재물과 명예를 따르는 죄들을 부모로부터 보아왔기 때문인것 입니다.너무 늦기전에 성령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 서로 사랑하고 말씀으로 무장되어 어떠한 유혹과 시험을 당하더라도 주님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이웃과함께 살아내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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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맞아들여 북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심취한 것을 보고 우리 고려의 역사 충렬왕비와 공민왕비가 원나라 공주임을 통해 고려의 풍습이 온통 원나라 즉 몽고의 풍습으로 바뀌는 아이러니가 생각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애를 갖이 하지 말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나 스스로를 말씀으로 잘 훈련시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환경에서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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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룩해 져야 만 세상 속에 들어가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으리라는 말씀 가슴에 심습니다.
      귀한 메세지 감사해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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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나라의 흥망성쇠는 지도자의 믿음과 지혜에서 결정이 됩니다. 여호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산당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음행을 하도록 하며 권력의 욕심으로 동생들을 죽이는 등 온갖 못된 짓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경고를 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으므로 짧은 생을 마감함을 봅니다. 만약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를 했을 겁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지은 죄를 회개하여 용서 받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시고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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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조상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이 지은 죄, 조상에게서 이어 받은 잘못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되는 본문입니다. 유전자 탓이라고, 혹은 “보고 배운 것”이 그 모양이니 이 모양으로 사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하는 우리입니다. 먼 조상까지 갈 필요도 없이, 부모의 단점이나 취약성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을 합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좋은 점은 사실 이야기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뉴스처럼 좋은 내용은 묻히고 나쁜 소식만이 겉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볼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식이 무탈하게 잘 살 때는 부모로서 내 모습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식이 힘들어 할 때,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것처럼 보일 때 나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자식은 바람풍이라고 제대로 듣고 말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부모에게서 받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다 가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본성 (Nature) vs. 양육 (Nurture) 의 익숙한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요소 (우연이나 변이 같은) 가 있다고 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좋을대로 살다 비참하게 죽은 여호람을 읽은 이 아침도 나의 부족함을 은혜로 메꿔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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