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22장: 아하시야가 받은 불행의 열매

해설:

여호람이 죽고 그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추대 됩니다. 그의 형들은 아라비아 사람들이 침략했을 때 잡혀 갔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1절). 아하시야 왕은 22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어머니 아달랴(아합과 이세벨의 딸)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악을 행합니다(2절). 저자는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라는 말을 거듭 반복함으로써(3절, 4절 2회, 5절) 그 모든 불행이 아합 가문과의 결혼에서 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의 의견을 따라 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함께 길르앗의 라못을 침략합니다. 그 전쟁에서 요람 왕이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로 돌아오자 아하시야가 그를 문병하러 갑니다(5-6절). 바로 그 때 예후가 찾아와 요람을 암살합니다. 아하시야는 급히 몸을 피해 사마리아로 도피 했으나 예후의 군사에게 발각되어 살해 당합니다(7-9절).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달랴는 왕위를 찬탈하고 유다의 왕족을 모두 살해합니다(10절). 하지만 공주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막내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여섯 해 동안 성전에 숨겨 키웁니다(11-12절).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기 때문에 성전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묵상:

여호사밧 왕과 여호람 왕 그리고 아하시야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는 십계명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출 20:5-6절)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적극적으로 증오하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마땅한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그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대로 여호사밧이 심은 불신앙의 씨앗은 점점 자라서 그의 손자 때에 이르러 극대화 됩니다. 만일 여호사밧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아합 왕조와 정략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아합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손에게 비극의 씨앗을 물려 준 것입니다. 반면, 주님께서는 다윗 왕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셔서 아달랴의 손에서 막내 왕자 요아스를 구해 내십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킨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게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내 후손들에게 복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22장: 아하시야가 받은 불행의 열매”

  1. 북 이스라엘의 아합가문과의 정략결혼으로 심어진 죄의 씨앗이 어떤 결과들로 이어지는지를 여로사밧 여호람 아하시아 왕들을 통해 주님의 질투를 봅니다.
    한번 잘못된 아담을 통한 죄의 씨앗이 영원히 자자선손으로 이어지는 것을 교훈삼아 처음부터 부정한 마음에 유혹 당하지 않도록 늘 깨어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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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조와 정략적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께 묻고 허락을 받았더라면 3,4대의 후손이 피비린내나는 불행의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 를 생각해봅니다. 한 가문의 잘못된 선택으로 후대가 죽이고 죽는 일이 일어나는 역사를 보면 소름이 돕습니다. 질투의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자손 천대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매일 말씀 앞에 서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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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의 모든 추악한 죄와 어두움을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해지기를 원합니다.허락하신 자손들이 사랑과 기쁨과 평강을 주님안에서 누리며 살기를 간구합니다. 언약을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통해서라도 이루시는 신실 하신 주님께 영광을 드려올립니다. 이웃과 함께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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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이 어렵습니다. 질투에 대한 사람의 이해를 하나님께로 가져가 적용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질투는 모호하지 않은 감정입니다. 사랑처럼 여러 모습이거나 내부혼란을 가져오는 감정이 아닙니다. 누구를 질투할 때는 그의 무엇을 질투하는지, 왜 질투하는지도 압니다. 이런 감정을 하나님도 느끼신다는 생각 자체가 매우 낯섭니다. 아닐 것 같고, 아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종종 당신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어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가지고 그 이상을 뛰어넘는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니 가장 비슷한, 가장 근접한 언어를 찾아야 하는 데서 생긴 갭인지도 모릅니다. 조상의 죄, 부모의 어리석음을 물려 받은 (inherit) 우리의 모습이 본문에서 계속됩니다. 정략 결혼의 함정이 솔로몬 왕 이후 계속됩니다. 결혼 풍습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한 사회를 세워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혼으로 개인의 삶이 달라지고, 결혼 풍습으로 사회가 달라집니다. 최근에 끝난 한국 드라마 가운데 제주도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얽히고 섥힌 삶을 풀어낸 드라마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끝은 오랜 세월동안 엄마(어멍)를 미워한 아들의 이야기였는데 그의 미움은 친구 아빠 집에 들어가 “첩질”을 하며 살았던 엄마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드라마 관람평이나 해설 기사 가운데 제주도 문화에 대한 것을 읽었습니다. 제주도의 “삼다 (세 가지 많은 것)” 문화로 돌, 바람, 여자를 듭니다. 바다에서 죽는 남자들이 많아 혼자 된 여자들이 많고 이것은 곧 ‘첩’으로 들어가 사는 여자들도 많다는 것을 뜻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교단 총회에서도 아프리카의 대의원들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 중심적 사고로 굳어진 현실의 한 예로 여러 부인을 데리고 사는 교인에게 일부다처는 나쁜 것이니 그렇게 살지 말라고 목사가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의 여러 부인과 아이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말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너무 단순화시킨 예일 수도 있고, 지금 같은 시대에 그 길 밖에는 먹고 사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판단하는 일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이방 민족과의 결혼은 우리 시대가 말하는 타인종과의 결혼과 똑같은 무게와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는 여전히 찜찜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가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과 불순종이 결혼과 이방 문화의 수용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 시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피해 갈 수 있겠는지 묻게 되고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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