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31장: 십일조를 회복하다

해설:

두 주간의 축제가 끝난 후, 축제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유다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며 우상을 제거합니다(1절). 아마도 그들을 환대해 준 것에 대한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성전 제사를 위해 전념하도록 유다 백성에게 십일조를 바치도록 명령합니다(2-4절). 레위인들에게 토지가 분배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려 그들이 성전 제사에 전념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성전을 폐쇄한 후, 유다 백성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고, 그로 인해 레위인들은 스스로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 제사가 지속되게 하려면 십일조를 드리는 전통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 백성과 유다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은 기꺼이 십일조를 가져다 바칩니다. 그 일은 5개월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곡물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곡식 더미를 보고 주님을 찬양합니다(5-10절). 유다 백성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넘치게 바쳤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성전 안에 창고를 마련하여 바쳐진 십일조와 제물을 보관하게 하고 책임자를 세웁니다(11-13절). 왕은 또한 성전 바깥에서 바쳐진 제물을 관리하고 나누어 주는 일을 담당할 사람들을 임명합니다. 그들은 바쳐진 십일조가 모든 레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했습니다(14-19절). 

저자는 히스기야가 모든 일을 “선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20절) 처리 했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고 평가합니다(21절).

묵상:

레위인들이 성전에서의 직무에 전념하게 하려면 다른 열한 지파 사람들이 그들의 생계를 책임 져야 했습니다. 영토를 분양받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한 레위 지파를 위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십일조 헌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무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혜를 생각한다면 그들은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의 희생으로 자신들이 언제든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노력하여 마음껏 재산을 불려갈 수 있었지만, 레위인들은 주어진 십일조에 자족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했다면 더욱 기쁨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아하스 왕이 성전 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레위인들의 직무를 박탈하자 유다 백성은 십일조 드리기를 멈췄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사와 예배가 그치면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마음이 식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사소한 핑계만 있어도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니 성전 문이 폐쇄되고 레위인들의 직무가 박탈되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희소식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일조 드리기를 멈췄고, 레위인들은 스스로 벌어 먹기 위해 고생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를 통해 성전 제사가 회복되고 두 주간 동안의 절기를 통해 은혜를 회복하자 유다 백성은 즐거이, 기꺼이, 아낌없이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은혜가 마음에 들어차니 아무 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사랑으로 나누면 아무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 모두가 넉넉해진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31장: 십일조를 회복하다”

  1. 가정에서 직장과 사회와 교회에서 모든 행하는 일과 삶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다 함께 들이는 예배가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예배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모든 예배자 들이 재물 뿐만 아니라 온몸과 영혼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제자들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의 모든 행함과 삶이 이웃과 더불어 주님께 들이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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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과 성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앞날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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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레위인의 마음으로 성전을 섬기는 사역자들의 그 헌신의 마음을 성도들이 기억하게 하소서. 또 사회에서 힘들게 번 재물을 나누고 이기적으로 쓸수 있는 자기 시간을 교회에 드리는 성도들의 마음을 사역자들이 헤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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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전의 문이 활짝 열리고 예배가 회복되어 늘 제사를 올릴 수 있게 된 예루살렘의 기쁨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 백성의 예배가 바르게 되니 관계도 따라서 바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의 수직과 수평이 맞춰지는 것을 봅니다. 내 그릇만 보다가 이웃의 그릇도 보게 되는 심리적인 여유가 생깁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보다 못 가진 사람도 있는 것을 보는 폭이 생깁니다. 이상적인 사회상이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양극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고, 가운데는 점점 없어집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또 쪼개져 더 작은 세개, 네개가 됩니다. 숫자로는 늘어나는 것 같은데 내용은 줄어든 이상한 산수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백성과 함께 이룩한 것은 예배와 성전의 회복입니다. 우리 시대로 옮겨올 수 있는 히스기야 때의 성공은 무엇일까요. 그 때의 예배와 우리의 예배는 뭐가 다를까요…. 오랫동안 기도해 온 것이 있습니다. 늘 바라는 바,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습니다. 생각의 출발이 잘못 되었으니 구하는 것도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겠지요. 새로운 깨달음은 기도의 언어를 단순하게 바꿔주었습니다. 기도할 것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주님 앞에 바로 서 있는지부터 보는 것이 시작임을 배웠습니다. 예배의 회복이 기도의 변화에서 시작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혜도 정성도 부족하기만 한 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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