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지하 36장: 유다의 패망

해설:

요시야가 전쟁에서 당한 부상으로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추대 됩니다. 바빌로니아와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다가 예루살렘에 들른 느고 왕은 자신의 허락 없이 추대된 여호아하스를 삼개월 만에 폐위시키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엘리야김을 꼭둑각시 왕으로 세운 다음 유다를 속국으로 만듭니다. 느고 왕은 엘리야김에게 여호야김이라는 새 이름을 내리고, 여호아하스는 포로로 잡아갑니다(1-4절). 

여호야김은 이집트의 봉신왕으로서 12년 동안 통치 했는데, 신흥 강국이 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략하여 그를 폐위시키고 성전의 보물들을 모두 약탈해 갑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꼭둑각시 왕으로 세웁니다(5-8절). 유다는 이집트의 속국에서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됩니다. 여호야긴은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 10일만에 폐위되어 잡혀가고, 그의 삼촌 시드기야가 왕이 됩니다(9-10절). 시드기야는 11년 동안 왕으로 있었으나 기울어 가는 국가의 운명을 바로 잡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악행과 우상숭배를 일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여러 예언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으나, 시드기야도, 백성도 듣지 않습니다(11-16절).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에 도움을 청했고, 그것에 분노한 느부갓네살 왕이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이로써 주전 587년에 유다는 패망했고, 성전과 성벽은 폐허가 되었으며, 살아남은 백성 중에 유력한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 갑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킬 때까지 유배 생활을 했는데, 그것은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한 그대로 된 것입니다(17-21절). 

주전 539년, 페르시야의 고레스 왕이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행한 첫 번째 일은 포로로 잡혀 온 여러 나라 민족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일입니다. 저자는 고레스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렇게 했다고 전합니다(22-23절).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묵상:

저자는 요시야가 사망한 후 23년 동안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틈바구니에서 유다 왕국이 찢기고 갈기다가 결국 절명하는 과정을 빠른 필치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에서의 70여 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백 년 가까운 기간에 일어난 일을 몇 문장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저자의 관심은 유다가 패망한 과정보다는 그 원인을 밝히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기록을 통해 그 원인을 충분히 밝혔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서술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께서 고레스 대왕을 통해 유다 백성에게 새롭게 시작할 계기를 마련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바빌로니아에서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유다 백성이 그 뜻을 깨닫고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마무리 지은 것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잠시 멈추어 지난 날들을 돌아 보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경우도 그렇고 한 단체 혹은 국가도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민족은 위기의 때에 역사를 다시 쓴다고 합니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과거를 미화 하자는 뜻이 아니라 그런 위기를 자초하게 된 과오를 돌아 보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동일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유다 민족은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기록 했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역대지를 기록 합니다. 그러한 역사 기록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위기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 개인도, 단체도, 국가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하느냐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자신을 고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4 responses to “역대지하 36장: 유다의 패망”

  1. 이스라엘과 유대의 역사가 어쩌면 떠나온 조국의 역사와 비슷한지 두렵습니다. 오늘 말씀이
    너무늦기전에 지도자들 부터 온 민족이 주님앞에 나와 회개하는 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할때인데 당파 싸움만하고 있는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를 간구합니다. 이웃과함께 조국의 장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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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다가 패망하는 과정을 읽으며 마치 조선이 세도정치와 함께 청나라와 일본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왕실의 비행과 세도가들의 패륜으로 끝내는 일제의 식민지 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지만 역사를 제대로 거울삼지 못하고 권력투쟁과 외세로인해 남북으로 갈리며 분단으로 살아가는 조국의 현실이 유다의 멸망 과정과 바벨로니아에서 해방된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지리멸려하게 역사를 이어가며 역사의 교훈을 지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역사의 과정을 배웁니다, 어떤 위기에 처해도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주시고 주님의 길에서 벗어니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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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역대지의 마지막 장을 묵상 하면서 수백 년 동안 주가의 변동 그래프와 같은 역사의 흐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와 찬양을 드리므로 태평 성대를 이루고 하나님을 등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왕은 예언자의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전쟁으로 백성을 불안 하게하고 결국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 자신이 하나님과 단절한 자와 가정, 나라, 단체, 기관 등은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멸망하게 한다는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 감사 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말씀에 순종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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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역대지서에서 여러 번 백성이 “다른 나라들의 악한 것을 본받았다(14절)”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이 랍비 조너던 색스의 Not in God’s Name 인데 저자는 형제간의 경쟁 (sibling rivalry) 을 심도있게 다룹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일과 브니엘에서 천사와 싸운 일, 곧이어 형 에서를 만나 화해하는 일 등을 야곱의 자아발견의 시각에서 다룹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되면서 이는 “하나님과 씨름 했고 사람과도 씨름을 해서 이겼기 때문 (창 32:28)”이라고 천사는 말합니다. 저자는 성서에 나오는 이름들 특히 하나님이 주는 이름은 레이블 label 이 아니라 콜링 calling 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야곱) 개인과 백성은 씨름을 하고 싸움을 하면서 끝내 이겨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서 에서인양 속이고 받는 장자의 축복과 그 후에 삼촌 라반에게로 도망 가기 전에 이삭이 또 해주는 축복 기도의 차이를 말합니다. 에서가 받았어야 할 장자의 축복은 부와 권력의 복인 반면 집을 떠나며 야곱이 받는 축복은 자식과 땅 즉 언약의 복 covenantal blessings 이라고 말합니다. 브니엘에서 야곱이 받은 새 이름은 그가 평생 씨름한 욕망 – 맏이 (에서)가 되고 싶은 – 을 이기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새출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색스는 천사가 야곱에게 했을법한 말을 이렇게 상상합니다. “과거에 너는 에서가 되려고 싸웠다. 앞으로 너는 에서가 되려 싸우지 말고 너 자신이 되어라. 과거에 너는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았다. 앞으로 너는 하나님 만을 붙잡아라. 너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아라.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에서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고 하나님을 붙잡아라.”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역대지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 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서술은 야곱의 이름 값을 하지 않았다는 고발이기도 합니다. 남을 부러워하며 따라 하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야곱의 유산입니다. 이스라엘 (야곱)이 이스라엘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오리지널로 태어났는데 카피로 사는 것은 죄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역대지서를 마치며 사회와 역사라는 큰 배경 앞에 서 있는 작은 나를 봅니다. 작다 못해 없는 것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매일 만나 주십니다. 이스라엘처럼 나도 씨름에서 이기라고 하십니다. 이미 이겼다고 하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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