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기 4장: 토착민들의 방해

해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1절)은 앗시리아에 의해 가나안 땅에 이주해 온 이방 사람들 혹은 그들과 통혼 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에게 찾아와 재건 공사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2절). 그러자 스룹바벨은 고레스 왕의 조서를 언급 하면서 청을 거절합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의 관습에 깊이 물들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3절). 그러자 그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건 공사를 방해합니다(4-5절).

여기서 저자는 시대를 건너 뛰어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5년)과 아닥사스다 왕(주전 465-424년)이 다스릴 때 일어났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다 백성이 성벽 재건 공사를 시작하자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연명 상소문을 보내어 방해합니다(6-10절). 저자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상소문의 내용을 소개합니다(11-16절). 그들은 상소문에서 유다 백성이 반역의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과 성벽이 재건되면 독립을 꾀할 것이라면서 성벽 공사를 중단시키라고 요청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그 상소문에 설득되어 조서를 내려 성벽 재건 공사를 중지시킵니다(17-23절).

이렇듯, 대적들은 후에 성벽 공사를 방해한 것 같은 집요함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방해했고, 그로 인해 성전 재건 공사는 기초만 놓고 나서 20여 년 동안 중단 되었다가 다리우스 왕(주전 522-486년)이 통치할 때 재개 되었습니다(24절).

묵상: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한 것은 주전 722년의 일이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정복한 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혼혈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그 정책에 따라 앗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를 여러 나라로 이주시켰고, 다양힌 민족을 이스라엘 땅에 이주시켰습니다. 주전 538년에 유다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 왔을 때,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은 2백 년 가까이 지속된 통혼으로 인해 인종적으로 뒤섞이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혼합 종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스룹바벨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성전 재건 공사에 그들의 참여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유다 백성은 그 이후로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음해와 방해 공작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 문을 열어 주셨고, 예언자들을 통해 재촉 하셨습니다. 귀환 후에 자기 살기에 바빴던 유다 백성은 2년 만에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토착민들의 방해로 인해 재건 공사는 지체되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렸으나 20년이 되도록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공사를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토착민들의 방해로 인해 좌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사가 지연 되었을 때, 유다 백성 중에는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일인가?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왜 이렇게 길이 열리지 않는가?’라는 의문으로 회의감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 하셨다는 사실 혹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은 아무런 난관이나 어려움 없이 일이 풀릴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일이 풀려 간다는 말은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방해와 역경과 난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요소입니다. 그것이 죄 된 인간사의 현실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믿음에는 인내가 필수입니다.       

5 responses to “에스라기 4장: 토착민들의 방해”

  1.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인 가정,교회를 지어가는데 세상이 온갖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능력만이 해답인줄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온전한 성전을 인내로 소망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가정, 사회, 나라와 교회가 완전한 성전이 되는 때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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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같은 피를 가진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을 시기와 질투로 방해하는 그 당시를 생각하며 우리의 행방 전후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해방 된 줄 알고 자치적으로 건국 준비를 전국 규모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시기와 질투와 권력투쟁으로 미군정에 빌붙어 건준을 해채시키고 혼란의 해방 정국으로 몰아넣어 방공의 기치아래 끝내는 단독 정부수립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렸던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되 돌아보며 그것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어려움을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삶면서 주님의 뜻을 옳게 이해하고 순종하는 지혜와 믿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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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려움과 난관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난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구하게 됩니다. 마치 제 삶과 사역이 그 상황 가운데 있는 듯 합니다. 본질을 꿰뚫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구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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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핑계는 납세 거부와 같은 정치적인 반역입니다. 성전을 짓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나 조공 등을 거부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뭉쳐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페르시아에 부담이 됩니다. 세금을 거둬 들이는 일이 순탄하지 않으면 식민지의 통치가 그만큼 순탄하지 않다는 뜻도 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편지를 읽은 뒤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심을 내어 추진하던 일을 멈추어야 하는 돌발 상황을 만났습니다. 기뻐하며 의욕을 가지고 하던 일인데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 중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애를 써보는데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손을 놓고 쉬어야 하는데 쉬어지지가 않습니다. 중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이 느껴지고, 어려움을 만나면 어떻게든 뚫고 나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되려 급해집니다. 사람의 길이 매끄럽게 앞으로만 전진하는 것은 아니어서 믿음으로 결단하는 일들도 마냥 순탄하고 깔끔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비둘기처럼 순진하면서 또한 뱀과 같이 지혜롭기도 해야 하는 세상살이입니다. 어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의 길을 묻고, 또 세상이 묻는 일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하는 지도 묻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도 있고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또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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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 우리 가정에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가정과 가족들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떠나지 마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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