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에스라가 백성을 위해 성전 앞에서 기도하며 울자 유다 백성도 그와 함께 자복하며 회개합니다(1절). 그 때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합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아내와 자녀를 내어 보내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2-4절). 에스라는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뜻을 물으니,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5절). 에스라는 성전에서 물러 나와 어느 집에 들어가 밤새도록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6절).
이 결정에 따라 얼마 후 포로 되었다가 귀환한 유다 백성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는 소환령이 전해집니다. 명령이 전해진 날로부터 사흘 안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한다는 경고가 전해지자, 사흘 안에 모두가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마침 그 때 큰 비가 내립니다(7-9절). 백성이 성전 앞에 모이자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은 아내를 자녀와 함께 내보내라고 명합니다(10-11절). 그러자 회중은 기간을 정하고 지도자를 세워 절차대로 질서 있게 행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12-14절).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에스라는 다수 의견을 따라서 그 일을 맡아 처리할 사람들을 세워 행하게 합니다(15-16절). 약 3개월 정도의 조사 끝에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이 정리됩니다(17-44절).
묵상: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이 이방 여인과 통혼을 한 이유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혼 여성이 귀환을 결정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결혼 적령기에 해당하는 유대인 남성은 유다 땅에 이주해 살던 이방 여인들 중에서 배우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각자의 상황을 고려할 때 통혼은 그리 큰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로됨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을 제사장의 나라로 다시 세워 조상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게 하고 싶었던 에스라에게는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본다면 묵인할 수 있었지만, 민족 전체의 운명과 사명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그대로 묵인 하자니 조상들의 운명이 반복될 것 같고, 결혼한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에스라가 이 문제로 골몰할 때, 스가냐가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에스라의 고민을 간파하고 “우리가 제사장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용기 있게 밀고 나가십시오”(4절)라고 덧붙입니다. 에스라가 지도자와 백성의 뜻을 물어보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합니다. 그 답을 받고 에스라는 여호아난의 방으로 들어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기도합니다. 통혼한 사람들을 그대로 묵인하는 것이 옳은지, 이방 여인들을 내보내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밤새 번민 했을 것입니다. 묵인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위험을 감수하자는 것이고, 내보내는 것은 함부로 이혼하지 말라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밤새워 번민한 끝에 에스라는 후자를 택합니다. 유다의 지도자로 세워진 그로서는 어느 한 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이혼 당한 이방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원한을 품고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봅니다. 밤새도록 금식하며 기도하고 행한 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행과 원한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죄가 위험하고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더 큰 죄를 낳고, 악은 더 험한 악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죄를 탐하지도, 범하지도 말도록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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