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기 10장: 통혼한 사람들에 대한 에스라의 조치

해설:

에스라가 백성을 위해 성전 앞에서 기도하며 울자 유다 백성도 그와 함께 자복하며 회개합니다(1절). 그 때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합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아내와 자녀를 내어 보내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2-4절). 에스라는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뜻을 물으니,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합니다(5절). 에스라는 성전에서 물러 나와 어느 집에 들어가 밤새도록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6절). 

이 결정에 따라 얼마 후 포로 되었다가 귀환한 유다 백성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는 소환령이 전해집니다. 명령이 전해진 날로부터 사흘 안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한다는 경고가 전해지자, 사흘 안에 모두가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마침 그 때 큰 비가 내립니다(7-9절). 백성이 성전 앞에 모이자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은 아내를 자녀와 함께 내보내라고 명합니다(10-11절). 그러자 회중은 기간을 정하고 지도자를 세워 절차대로 질서 있게 행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12-14절).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에스라는 다수 의견을 따라서 그 일을 맡아 처리할 사람들을 세워 행하게 합니다(15-16절). 약 3개월 정도의 조사 끝에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이 정리됩니다(17-44절).

묵상: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이 이방 여인과 통혼을 한 이유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혼 여성이 귀환을 결정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결혼 적령기에 해당하는 유대인 남성은 유다 땅에 이주해 살던 이방 여인들 중에서 배우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각자의 상황을 고려할 때 통혼은 그리 큰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로됨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을 제사장의 나라로 다시 세워 조상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게 하고 싶었던 에스라에게는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본다면 묵인할 수 있었지만, 민족 전체의 운명과 사명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그대로 묵인 하자니 조상들의 운명이 반복될 것 같고, 결혼한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에스라가 이 문제로 골몰할 때, 스가냐가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에스라의 고민을 간파하고 “우리가 제사장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용기 있게 밀고 나가십시오”(4절)라고 덧붙입니다. 에스라가 지도자와 백성의 뜻을 물어보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합니다. 그 답을 받고 에스라는 여호아난의 방으로 들어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기도합니다. 통혼한 사람들을 그대로 묵인하는 것이 옳은지, 이방 여인들을 내보내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밤새 번민 했을 것입니다. 묵인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위험을 감수하자는 것이고, 내보내는 것은 함부로 이혼하지 말라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밤새워 번민한 끝에 에스라는 후자를 택합니다. 유다의 지도자로 세워진 그로서는 어느 한 편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이혼 당한 이방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광야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원한을 품고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봅니다. 밤새도록 금식하며 기도하고 행한 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행과 원한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죄가 위험하고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더 큰 죄를 낳고, 악은 더 험한 악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죄를 탐하지도, 범하지도 말도록 힘써야 합니다. 

5 responses to “에스라기 10장: 통혼한 사람들에 대한 에스라의 조치”

  1.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며 살아 왔습니다. 세상의 탐욕을 온전히 정리하고, 지금부터라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셔서 의의길에서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의 언약을 깨닫고 피부로 느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더불어 사랑과 은혜의 주님께 감사하며 베풀며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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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쟁을 통하여 일어나는 참혹한 인륜의 비극을 보며 더 이상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만 국익을 앞세우고 또는 최 강국이라는 패권을 유지하기위해 남의 나라 전쟁이 뛰어드는 현실을 보고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그리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발걸음이 가벼워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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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고 살아갈 때에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잊고 물질과 육적인 삶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영과 육적인 삶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발전시켜서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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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어떤 어려운 선택을 해도, 모든 것이 권선징악의 형태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개하며 한 결정과 선택이지만 죄의 댓가는 처참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다윗의 욕망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 결국 아기가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듯이…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겸손히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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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에스라서는 10장입니다. 책의 형태로는 10장으로 구분되지만 한 번에 전체를 다 읽거나 들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이야기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유다 식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고 예배하며 살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왕은 재무 관리인에게 명해서 성전에 원래 있었던 그릇들도 꺼내어 주고 금과 은, 선물과 예물도 줍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명단도 책의 초반에 나옵니다. 이야기 끝부분에 전혀 다른 명단이 나옵니다. 왕의 명령으로 고향에 안착한 사람들 중에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남자들의 명단입니다. 이들은 에스라와 가문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라 아내와 자식들을 집에서 내보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책 중간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두번째 그룹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성전을 재건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을 기록해 둠으로써 이들의 결정은 성스러운 응답으로 남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방 아내와 자식을 내보내는 이들의 명단도 수치스럽게만 볼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 공동체의 정화와 새역사를 위해 개인적인 아픔을 감당한 사람들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두 아내와 헤어지기로 약속 (19절)”했다고 기록된 이 사람들은 얼핏 세어보니 100여 명입니다. 성전은 새로 지어졌으나 이들 백 여명은 개인사의 한 부분을 없었던 일로, 무효로 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보내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나의 지성이나 감성과 맞지 않는 부분을 만납니다. 일반 독서와 성경 읽기가 다른 때가 이런 때입니다. 다른 책들은 읽다가 내 “취향”이 아니면 그만 읽거나, ‘작가는 이렇게 주장해도 나는 아닌데’ 라며 내 입장을 다시 정리하거나, 전문 연구서일 때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보게 하는 도전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이기에 그런 자세 자체가 불편합니다. 그러면 안될 것 같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마치 싫어도 넘겨야 하는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꿀송이처럼 단” 말씀만 적혀 있는 책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묵상은 성경을 읽자마자 다 되거나 처음 떠오른 생각이 전부 다인 일이 아니라 두고두고 계속되고 또 중간에 바뀌기도 하는 일입니다. 에스라서는 이방의 통치자 입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지으러 이제 고향 땅으로 돌아가거라 하는 명령으로 시작했습니다. 통쾌하고 자랑스러운 시작입니다. 비록 솔로몬의 성전처럼 화려하고 멋진 건축은 아니었어도 하나님의 도움을 입어 재건하는 데 성공도 했습니다. 그런데 끝에 와서 이방 민족과 통혼을 함으로써 애초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린 큰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공동체는 이를 회개하며 아프고 어려운 결단을 내립니다. 결혼과 이혼이 엄청 쉬워진 오늘의 독자에겐 결코 별 일이 아닐 것 같은 본문인데도 꿀꺽 삼키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책임과 기준은 그때도 지금도 세상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주님의 도움과 인도가 오늘도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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