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기 8장: 율법을 읽어주다

해설:

성벽을 완공한 후 2개월 쯤 지났을 때, 모든 백성이 성전 광장 앞에 모입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읽어 달라고 청했고,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읽어 줍니다(1-3절). 그는 임시로 만든 높은 단 위에 섰고 지도자들이 그의 좌우에 도열해 있었습니다(4절). 에스라가 율법을 읽기 위해 책을 펴면 백성은 일제히 일어나 존경을 표했고, 에스라가 율법을 읽다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은 화답했습니다(5-6절). 레위 사람들은 백성 사이에 서서 통역도 해 주고 율법의 의미를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7-8절).

율법을 듣는 동안에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곡합니다. 그러자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은 감정을 자제시킵니다. 그들의 심정은 알지만 지금은 통곡할 때가 아니라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때라고 타이르면서 돌아가 이웃과 함께 잔치를 즐기라고 지시합니다(9-11절). 백성은 감정을 추스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이웃과 함께 잔치를 나눕니다(12절). 

다음 날, 각 가문의 원로들이 에스라에게 찾아가 율법을 더 깊이 연구하는 중에 초막절에 대한 규정을 발견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유랑을 기억하고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레 23:23-44). 그들은 백성에게 돌아가 그 사실을 알렸고, 백성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일 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에스라는 매일 율법을 읽어 주었고 백성은 감사와 감격으로 축제를 즐깁니다(13-18절).

묵상: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린 다음, 텅 비어 있던 성 안에 백성을 이주시킵니다. 성벽을 재건한 이유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 안에 백성을 이주시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의 백성으로 다시 세워지기 위해서는 율법으로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을 성전 광장에 불러 모아 놓고 에스라에게 율법을 읽어 주게 합니다. 6시간 동안 율법을 경청한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곡합니다.  

이 지점에서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단 위에 세워 놓고 자신은 단 아래로 내려 섭니다. 권력과 권세로 본다면 느헤미야는 에스라 위에 있었습니다. 또한 이 순간까지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영광을 받고 누릴 만한데 에스라를 높이 세우고 자신은 아무 미련 없이 단 아래로 내려 옵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누릴 권세와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유다 백성이 제사장의 나라로 다시 세워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4 responses to “느헤미야기 8장: 율법을 읽어주다”

  1. 먼저 하루의 일상을 말씀읽고 묵상으로 시작하도록 허락하신 은총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듣고 지난날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회개 하기를 원합니다. 소외된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하고 감사하며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죄의 노예로 부터 해방된 시간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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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70 여년의 포로생활로 언어가 바뀌어 까맣게 잊혀졌던 모세의 율법을 되 찾으며 감격하는 모습이 마치 40여년간 일제의 통치에서 해방 됐을 당시의 기쁨과 혼동을 동시에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이 다시 질서를 유지하고 율법책에서 발견한 초막절을 지키며 회한을 풀고 감동하면서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내 주는 여유를 보면서 해방후 계급과 이념으로 갈리어 극심한 갈등을 격었던 우리의 과거를 회상해 봅니다.
    초막절을 새롭게 지키면서 지난 날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되색이며 즐거워하듯 지난 날들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오늘을 즐거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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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수 십 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집을 떠나 온갖 고난을 경험 면서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는 그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을 위로 하고 말씀 잔치를 펼치게 해준 느헤미야의 백성을 위한 지도력을 존경합니다. 주님! 가정에서 나라에 이르기까지 겸손한 자세로 가족과 백성을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허락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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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루살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귀환민은 가문 별로 숫자를 센 남자들에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합치면 5만여 명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물 문’ 앞에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2절).” 모세의 율법책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집단에서 공동체로 바뀌는 일은 공통의 관심사와 경험의 나눔이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개인이 친구로 바뀌는 일도 비슷합니다. 관심사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친밀감이 생깁니다. 한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되면 친밀감에 속도가 붙어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해서 공동체로 잘 유지되고 결속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경험도 경험 나름이고, 같이 있는 시간의 길이나 유의미성, 같이 경험한 것을 재해석하고 소화 시키는 기회 등이 있는지 후속으로 뒤따르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회적인 일로 끝나지 않고 반복해서 심화하는 일이어야 단체가 공동체로 바뀌는 데 기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스라에게서 율법을 듣고 깨닫습니다. 들은 뒤에는 같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초막절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는 성전 뜰과 광장에 초막을 세우고 절기를 지킵니다. 공동체 수련이 깊어집니다. 현대는 공동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공동체는 소속감과 직결되고 소속감은 사람의 기본 필요 중 하나입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냉담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가 공동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커뮤니티가 되어 주지 않고 tribe (부족)이 되지 않는 그룹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슨 소셜 클럽이냐,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이런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찾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교회에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같이 깨닫고 경험하는 일 자체가 기적적인 일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 주소서.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부터 식량 재배와 공급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고민이 실로 크고 막중합니다. 인류가 공동체로 발돋음하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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