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기 9장: 공동체의 기도

해설:

초막절을 지킨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다 백성은 다시 모여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씁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했던 일입니다(1절). 예루살렘에 모이기 전에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었습니다. 정결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자신들의 죄와 조상의 죄를 고백합니다(2절). 낮의 사분의 일은 율법책을 읽는 일에 사용하고 다른 사분의 일은 기도하는 일에 사용합니다(3절). 그런 다음, 레위 사람들이 단 위에 서서 예배를 인도합니다. 한 그룹은 백성을 대신하여 회개의 기도를 올리고, 다른 한 그룹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4-5절).

5절부터 37절까지는 레위인들이 드린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에서는 역사를 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백성이 얼마나 신실하지 못했는지를 고백합니다(5-31절).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의 패턴(하나님의 은혜 —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 — 하나님의 징계 — 백성의 부르짖음 — 하나님의 구원)이 무한 반복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패턴이 반복되며 악화 되다가 결국 완전히 패망한 것입니다.  

두번째 부분(32-37절)에서는 유다 백성이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나라가 되도록 주신 땅에서 다른 민족의 노예로 살고 있는 형편입니다. 조상의 죄로 인해 충분한 고난을 겪었으니, 이제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고 다시 번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후,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 하겠다는 언약을 맺고 문서를 작성한 다음 지도자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그 위에 서명을 합니다(38절).

묵상:

레위인들이 드린 공동체의 기도는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하시다는 사실과 이스라엘 백성은 그 자비와 은혜를 거듭 배반 했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시절부터 패망 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 처할 때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다가 편안해지는 즉시 하나님에 등 돌리고 멀어져 가곤 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너무도 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오래도록 간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자비를 죄의 기회로 오용하는 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은 모든 인류의 문제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에 의지하여 이 기도를 올립니다. 조상들에게도,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만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징계를 내리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정당합니다. 다만, 그들이 믿는 것은 그분의 은혜와 자비입니다. 인간의 죄악보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이 백만 번 죄를 범했어도 회개하면 다시 받아 주시는 분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그 은혜와 자비가 영원하고 무한하다는 증거입니다. 활짝 벌린 십자가의 가로대는 그분의 사랑에 제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설 입으면 기회가 왔을 때 그 은혜를 배반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제대로 입으면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무한 반복한 그 고질적인 ‘죄악의 패턴’에서 벗어나 늘 은혜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responses to “느헤미야기 9장: 공동체의 기도”

  1. 신실 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셀수없이 많은 잘못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많이 또 많이 등을 돌렸습니다. 완전하신 주님앞에 무릎을 끓는 연약한 저희들을 용서하시는 주님께 이웃과함께 감사와 배려하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오늘 오후에 허락하신 손녀가 결혼합니다. 주님께 영광 드리는 예수님 중심의 가정이 되도록 간절히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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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께서 자비와 사랑을 끝없이 부어 주심에 복을 누리며 살다가 말씀과 기도에 소홀함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탄에게 넘어져서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건축물이 주춧돌 없이 바로 서지 못하는 것처럼 가장 기초적인 말씀과 기도 없이 영적 생활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그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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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은혜 —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 — 하나님의 징계 — 백성의 부르짖음 — 하나님의 구원 이런 악 순환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을 보며 죄의 씨앗에서 못 벗어나는 허물을 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의지하여 담대히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편안하게 살만하면 끝내는 주님을 배반하는 죄성을 용서하시고 십자가의 은혜와 자비로 품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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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털어놓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합니다. 잘못한 일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잘못을 고백하고 주께 돌아가기로 결심하면 하나님은 받아 주셨습니다. 주님의 용서에 힘입어 새로 살게된 백성이 얼마 가지 않아 또 죄를 짓습니다. 산다는 것은 실수의 연속이고 사람은 죄에 파묻혀 허우적 거리는 것인가 봅니다. 아니면, 산다는 것은 실수를 통해 계속 배우고 새로운 출발을 거듭하는 일의 연속일까요. 무거운 바위덩이를 메고 산을 올라가 정상에 내려 놓으면 그 바위는 미끄러져 산 밑으로 굴러갑니다. 산을 내려와 바위를 다시 메고 그 산을 또 올라가 정상에 바위를 내려 놓습니다. 바위는 또 굴러 내려가고, 사람은 바위를 따라 내려옵니다. 우울한 이야기 입니다.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이야기 같습니다. 인생의 비유로는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시지푸스가 산을 오르면서 행복했을 것이라고,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푸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The Struggle itself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라고 글을 마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기도를 읽는데 시지푸스 신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무한반복의 부조리를 짊어진 것은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기다리시는 하나님. 도와달라고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잘못으로 가득 찬 과거 위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백성의 모습에서 나의 절망과 희망을 같이 봅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며 앞으로 걸어갑니다. 어제의 기도가 오늘 내 삶 속에 드러나기를, 오늘의 기도가 내일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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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나와 분리 될 수 없는 죄의 속성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하루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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