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기 11장: 예루살렘에 정착한 사람들

해설:

예루살렘 도시의 재건을 위한 모든 것이 완비 되었을 때, 느헤미야는 백성의 십분의 일을 예루살렘에 이주하게 하게 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자리 잡고 있던 지도자들을 도와 예루살렘을 부흥시켜야 했습니다. 주사위(제비)를 통해 예루살렘에 살도록 정해지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성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1-2절). 

저자는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명단을 소개합니다. 먼저 유다의 자손을 소개하고(3-6절), 다음으로 베냐민 자손을 소개합니다(7-9절). 그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중요한 조상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제사장들을 소개하고(10-14절), 이어서 레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15-18절). 이 경우에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조상들을 소개합니다. 계속하여 저자는 성전 문지기(19-20절)과 성전 막일꾼(21절)을 소개하고, 레위 사람의 지도자 웃사와 왕의 고문관 브다히야를 소개합니다(22-24절).

이렇게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을 소개한 후, 저자는 백성의 십분의 구가 흩어져 정착하게 된 지역을 소개합니다. 먼저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 정착한 지역을 소개하고(25-30절), 이어서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 정착한 지역을 소개합니다(31-36절).

묵상: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복구되고 모세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기로 언약함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부흥의 기초가 마련 되었습니다. 유다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중심인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도시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아무리 잘 준비되어 있어도 사람이 들어와 살지 않으면 무용 지물이 됩니다. 고대광실 화려한 집도 그 안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새 퇴색이 되고 폐허가 됩니다. 

폐허의 도시에 들어와 사는 것은 적지 않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주사위를 사용하여 백성의 십분의 일을 뽑아 예루살렘 안으로 이주하게 합니다. 주사위를 뽑아 예루살렘 바깥에서 살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대부분 그 결과로 인해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고 예루살렘에 정착 하기로 자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개인적인 안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루살렘 시를 복구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누릴 권리를 내려놓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때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responses to “느헤미야기 11장: 예루살렘에 정착한 사람들”

  1. 지금 같으면 서로 예루살렘에 남아 살겠다고 지원자들이 넘치고 남았겠지만 그 당시는 농경사회였기에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생산하기위해서는 시골지방을 더 선호 하였던 그들을 보며 그런 선택을 제비를 뽑아 실천에 옮기는 그들의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마주하는 선택권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 무당에게 찾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게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의무와 권리의 균형속에 주님의 뜻을 헤아릴줄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화토를 처서 하루의 운을 헤아렸던 우리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아침에 일어나 주님께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할수있는 우리가 참으로 큰 축복을 받은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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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에게는 거룩한성 예루살렘은 허락하신 교회 입니다. 때에따라 허락하신 사역 들을 신실하게 감당 하기를 간구합니다. 지난날의 잘못도 샘물같은 보혈과 사랑으로 용서 하신다는 언약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오해와 어려움 있더라도 우직하게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인생의 마지막까지 교회 근처에서 사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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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때로는 교우 때문에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상처를 받지도 말고 주지도 않는 주님 만을 바라보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살아가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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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문법에 능동태와 수동태가 있듯 삶의 문법도 내가 결정하는 것과 이미 결정된 것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마커 marker 들은 태어날 때 정해진 것과 살면서 선택한 나의 결정의 결과가 같이 섞여 있습니다. 영구적인 것과 바뀔 수 있는 임시적인 것이 같이 있습니다. 어렸을 땐 친구들과 미국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 났으면…부자집에 태어 났으면…왕조 시대에 높은 양반집 자제로 태어 났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하며 잠깐이나마 그런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이북이었으면, 아프리카에서 태어 났으면, 조선 시대 대감집 종이었으면…이라는 말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 와서 살게된 백성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제사장 가문이 있고 성전의 업무를 맡은 레위 사람들, 찬양대원들입니다. 예루살렘 주변 마을과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버지니아에 살 때 동네 이웃의 상당수는 와싱턴 디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디씨에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정부 관련기관의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많았습니다. 디씨보다는 근교가 집을 장만하기 쉽고 또 아이들 학교 여건이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예루살렘 거주민들과는 사뭇 다른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의 삶 자체가 그때와 많이 다릅니다. 수동태는 줄고 능동태는 많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결정된 것보다 차차 결정할 일의 가짓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결정장애”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니 무엇을 선택할 지 몰라 망서리는 “병” 아닌 병을 말합니다. 주님의 뜻을 중심에 두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부를 그분께 맡기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우선으로 여기는 결정이 모든 결정에 앞선다면…주님,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찬양대원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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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모든 결정들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자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불이익을 감당하여도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결정, 선택을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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