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기 13장: 몇 가지의 후속 개혁

해설:

봉헌식 날의 절정은 백성에게 모세의 율법을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듣는 중에 백성은 신명기 23장 3-6절 말씀을 듣고 그들 중에 섞어 있던 이방인들을 성전에서 분리시킵니다(1-3절). 

이 지점에서 느헤미야는 이전에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을 전합니다. 그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임기를 연장 받기 위해 페르시아 궁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 개월의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암몬 총독이었던 도비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 안에 있는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 앉았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그 사실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분개하여 그를 내어 쫓습니다(4-9절). 

그가 자리를 비운 짧은 기간 동안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백성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일에 소홀해졌고, 레위 사람들은 곤핍함을 견디다 못해 유다의 여러 마을로 흩어져 버린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꾸짖고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 들입니다. 백성은 다시 십일조를 성실하게 바쳤고, 느헤미야는 그 헌물이 골고루 나누어지도록 조치합니다(10-13절). 이 기록 끝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호의를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14절).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이 안식일 계명일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예루살렘 성문을 닫아 걸고 안식일 동안에 성 안에서 사고 파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합니다. 이렇게 기록한 후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호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15-22절). 느헤미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이 유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그 남자들을 심하게 징계하고 그 죄를 바로잡겠다고 맹세하게 합니다. 이방인과의 통혼이 유다 백성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3-27절). 

느헤미야는 대제사장의 손자가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제사장직에서 퇴출합니다(28-29절). 그는 또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에서 섬기기 전에 정결례를 행하여 이방 사람들로 인해 묻은 부정을 씻게 합니다(30절). 뿐만 아니라, 그는 때를 정하여 백성이 땔감과 첫열매를 바치게 하여 성전 제사에 지장이 없게 만듭니다. 이렇게 쓴 다음, 그는 또 다시 하나님의 호의를 비는 기도를 올립니다(31절).

묵상: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던 기간은 기껏해야 6개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성전 봉헌식에서 표현되었던 그들의 감사와 감격은 신속히 냉각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뜨거울 때 그들은 십일조와 첫 열매와 헌물을 기꺼이, 넉넉히 드렸습니다. 하지만 봉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들의 마음은 식어졌고 성전을 위한 헌신에 소홀 해졌습니다. 레위인들은 십일조와 헌물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성전을 떠나 유다의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땅을 일굽니다. 그들의 영적 해이는 안식일 계명을 함부로 어기는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이방 여인과의 통혼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아들이 산발랏의 딸과 결혼할 정도였으니, 일반 백성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는 두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쌓여 형성된 두터운 우정도 한 순간에 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시지만, 우리는 자주 한눈을 팔고 헛된 것에 이끌립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그분께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어듭니다. 어제까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 오늘 아침에 차갑게 냉각될 수도 있습니다. 영적 해이는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삶은 파멸을 향해 접근해 갑니다.

성소를 소중히 여기고 매일 그 성소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순간에 암흑으로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기에 매일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영적으로 살아있게 되고, 영적 생명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드러냅니다.   

5 responses to “느헤미야기 13장: 몇 가지의 후속 개혁”

  1. 몸과 영혼, 가정, 교회, 그리고 온 세상에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이방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성소를 더럽히지않는 영적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자 들이 의식주 문제로 어려움을 격지않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하나님을 기리고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베풀며사는 삶을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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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이 변화하는 환경과 식어드는 감정으로 인해 그 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어려웠던 것들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동행하는 믿음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꾸준한 마음 갖임으로 주님 곁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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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간은 본성이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제 소견에 오른 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영과 육을 감찰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경우가 있을 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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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스라엘의 모습들이 마치 수련회와 부흥회를 통해서 회심하고 열정적으로 반짝 타오르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고기를 구워먹어도 반짝 활활 타오르는 숯불은 고기의 겉부분을 타게 만들거나 안 까지 익힐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은은하게 계속 타오르는 숯불이 고기를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습니다. 내 신앙도 돌이켜 봅니다. 반짝 불타오르는 신앙생활이 아닌, 영적인 안정감을 가지고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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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백성의 회개와 결단이 오래 잘 지속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은 ‘혹시…’ 했는데 또 ‘역시’ 로 마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없던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본문에서는 밝히지 않지만 백성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이런 잘못의 배후에는 제사장 엘리아십이 있습니다. 그는 성전 뜰에 있는 방을 도비야에게 내 주었습니다. 거룩하게 지켜야 할 성전의 창고를 모압 사람인 도비야에게 쓰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규례를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모압인 여인과 결혼을 하지 말자고 정한 법을 어긴 것도 제사장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산발랏의 사위가 됩니다. 느헤미야의 일을 계속 방해하던 산발랏입니다. 지도층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못을 행하고, 백성은 이를 보고 죄에 점점 둔감해집니다. 물이 흐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다짐과 결단이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섰다가 얼마 되지 않아 또 휘청대고 쓰러집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지 않게 하소서. 주 앞에서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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