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기 10장: 후기

해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스 1세) 왕은 주전 486년부터 465년까지 20년 동안 페르시아를 통치 했고, 고대 역사가들에게 매우 강력한 군주로 인정 받는 사람입니다. 그는 공포 정치로 제국 내의 민족들을 다스렸고 잔인한 정복 전쟁으로 제국의 영토를 확장 했습니다(1절).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가 되었고, 자신의 권력으로 제국 내에 살고 있는 유다 백성의 안위를 지켜 주었습니다. 그 까닭에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에게 높이 존경을 받았습니다(2-3절).  

묵상:

구약성서 편집 과정에서 에스더기는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책 전체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 되지 않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점에 있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 왕과 결혼한 에스더와 왕실 관리로 취직 했다가 나중에 2인자가 되는 모르드개의 행동은 유사한 상황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순결성을 지켰던 다니엘과 무척 대비 됩니다. 다니엘의 시각에서 본다면,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매우 위험한 선택을 했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소외와 혐오와 배척과 박해를 일상처럼 감당해야 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에스더의 이야기는 희망과 용기의 책으로 읽혔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출애굽기와 요한계시록이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나치 시대에 수용소에 갇혀 살던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 에스더기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비록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한 일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일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차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 줍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선 자리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들려 줍니다. 당시 유대인들처럼 폭압적인 통치 하에서 숨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인간의 악마성이 높아지고 강해지면 하나님은 안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절망적인 상황조차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반면, 권력자 혹은 다수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힘과 능력으로 악마적 욕망을 충족 시키려는 유혹를 경계 하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인간은 힘이 강해 질수록 위험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responses to “에스더기 10장: 후기”

  1. 성경은 진리이고 진실임을 믿습니다. 의로움과 거룩함과 선한것만 적혀있는것이 아니라, 인류의 근본적인 추악함과 잔인한것 죄성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사실 그대로 나열 되었기에 믿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이웃과 함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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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신 일 만을 기록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인류의 나약하고 스스로는 통제할 수 죄 성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것은 성경을 반면 교사로 삼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스더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순수한 유다 민족 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성을 잃은 유다 민족은 물론 이방인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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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키는 부림절 명절에 대해 찾아 봤습니다. 에스더서가 성경으로 채택된 이유가 출애굽기처럼 원수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구원 받은 것을 명절로 정해 대대로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림 Purim 은 명절 중에서 가장 즐거운 절기랍니다. 미국의 부활절과 할로윈, 수난절기 직전에 하는 마디 그라 축제를 한 데 모은 듯 떠들썩하고 신나게 즐기는 절기입니다. 회당에서 부림절 전날 저녁과 다음날에 에스더서를 두 번 읽는데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총 54번) 이름 대신에 발을 구르거나 파티 때 빽! 소리를 내는 호루라기 장난감 등을 불어 그의 이름이 지워졌음을 축하하고, 과자를 만들어 서로 나누고 이웃에게도 돌리는데 하만타셴 (hamantaschen)이라는 쿠키는 하만이 썼던 삼각형 모자를 본 떠 세모 모양으로 접고 그 안에 달콤한 잼을 넣어 구운 쿠키로 부림절을 상징하는 음식물이랍니다. 해마다 3월경에 부림절이 돌아오는데 어떤 이들은 에스더서는 하나님이 이적을 사용하지 않고 구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이 사건으로 인해 유다 백성의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유다 민족을 죽이려고 했던 스탈린이 사망한 것도 부림절이었고,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에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며 긴장을 높여갈 때 미국과 우방이 합동군사작전을 개시한 날도 부림절이었다고 강조하는 인터넷 기사도 읽었습니다. 유다인이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전혀 무의미하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나의 삶에 스며들지 않습니다. 명절이나 기념일도 개인적인 연결고리나 내밀한 의미가 있을 때 생동감이 살아납니다. 8월이 끝나면 영어로 끝이 ber가 붙는 달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이 시작합니다. 필리핀에서 선교하시는 분이 필리핀은 9월부터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ber 가 붙는 달부터 크리스마스 날까지 계속 성탄절 모드랍니다. 필리핀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축제와 명절이 “필요”해서 일까요. 우리는 기념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의 싸이클에 맞추어 우리 삶의 질서를 정하는 일을 놓고 묵상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내 삶에서 발견하고 기념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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