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7장: 행한대로 갚으신다

해설:

에스겔은 이스라엘(여기서의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의 최종적인 패망에 대한 주님의 예언을 전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애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한계에 달했으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보응 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의 죄악을 참아 온 것은 그들에게 돌아설 기회를 준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죄악을 더 높이 쌓아 올리기만 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참았던 분노를 풀어 놓으실 것인데,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끝장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잔인한 이방 민족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무도 전쟁에 나서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왕도, 권력자도, 부자도 이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때가 되면 금은보화는 오물과 다름 없게 될 것입니다. 묵시도, 율법도, 지혜도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철저한 절망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예언은 주전 587년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고립시킨 다음 그 옆에 토성을 쌓아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 사이에 유다 백성은 굶주려 죽고, 전염병으로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바빌로니아 군대의 칼에 죽거나 포로로 끌려 갑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두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렇게 하여 제사장의 나라로 선택 받았던 이스라엘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묵상: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실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겠다”(4절, 8절, 9절, 27절)는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우리를 지켜 보시며 우리의 행실대로 낱낱이 보응 하신다면, 우리 중에 살아 남이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거나 2)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본 사람이라면, 그분의 절대 거룩 앞에서 자신의 절대 부정을 깨닫습니다. 그분의 절대성과 영원성에 비추면 자신은 너무도 하찮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당장 심판 받아 죽어도 자신에게는 아무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행실대로 갚으시지 않기 때문 임을 압니다. 내 존재의 모든 것, 내 삶의 모든 것이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 때문 임을 압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써 우리를 참으시고 견디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연약함으로 인해 때로 넘어지고 깨어져도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도록 힘쓰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은혜에 익숙해져 무감각 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자비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것이 패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끝까지 그분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결국 행한대로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5 responses to “에스겔서 7장: 행한대로 갚으신다”

  1. “그들의 행실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겠다” 숙연해 지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분노가 자비와 사랑으로 바뀌어 우리와 함께하심을 감사하며 내 자신의 죄성과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쓸어지고 남어질 때마다 손잡아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읍하여 오늘도 무릅을 꿀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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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벌레보다 못한 추하고 고약하고 가련한 인생입니다. 마땅히 칼에 맞아서, 병에걸려서 아니면 굶어 죽어야할 인생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언어와 행함과 삶으로 이웃과 함께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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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남 유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그들의 주인으로 알지 못하고 역겨운 행실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불러들이는 어리석고 교만함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실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을 십자가의 보혈로 살려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항상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서 내 안에 교만함이, 역겨운 행위가 사라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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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 묵상 분량인 6장 대신 7장을 읽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습니다. 어제 읽었던 7장을 또 읽고 묵상합니다. 종말이 온 날, 불행의 날, 마침내 올 것이 온 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의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이나 예수 재림에 대한 설교가 흔하지 않지만 신앙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고백하는 믿음이 중요한만큼 아직 오지 않은 그날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맡긴다는 고백은 심판과 재림을 믿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심판의 날을 기다리거나 기대하며 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구원의 날을 기다리고, 기도가 응답되는 날을 갈망하기는 해도 종말이 온 날, 끝장이 난 날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도 ‘컨트롤’이란 단어를 우리처럼 사용하실까? control 처럼 어렵고 복잡한 단어는 더더욱 하나님과 우리가 쓰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은? 성공은? 명예, 사랑, 건강, 정상 (normal), 믿음, 교회는?? 언어는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부 사이에, 한 가족 사이에 그들의 언어가 있습니다. 친구 사이는 말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하루 중에도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말을 못해서 끙끙 앓습니다. 언어가 치유를 하기도 하고 독을 풀기도 합니다. 오늘 7장을 읽으니 (앞으로 내내 그렇겠지만) 그동안 하나님이 하실 말이 참 많았겠구나 싶습니다. 며칠 전 목사님이 언급하셨듯 오래 참으신 하나님, 오랫동안 징계를 미루신 하나님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컨트롤 하시는 방법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살짝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언어를 통해서, 또 그것을 넘어서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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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나를 아는 것은 모든 신앙의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이 기도가 내 삶에 항상 각인되어지고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가면 나를 인정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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