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8장: 예루살렘의 타락상

해설:

첫 번째 환상을 본 날(1장 2절)로부터 약 1년 후, 에스겔은 또 다른 환상을 봅니다(1절). 환상 속에서 아랫도리는 불처럼 보이고 허리 위로는 금빛 광채를 발산하는 존재가 나타나 그의 머리채를 잡아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곳에는 질투의 우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발 강가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있었습니다(2-4절).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북쪽을 보라 하셔서 눈을 돌리니 제단으로 들어가는 문 어귀에 질투의 우상이 있었습니다(5절). 주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성전에서 역겨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찰나에 있다고 하십니다(6절). 

에스겔은 주님에게 이끌려 성전 뜰을 지나 어느 벽 앞에 섭니다. 벽에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에스겔에게 그 벽을 허물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했더니 문이 하나 나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7-9절). 들어가 보니 방의 벽에는 온갖 불결한 짐승들과 우상의 모양이 새겨져 있고,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의 지도 하에 일흔 명의 장로들이 이교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말하면서 이방 신을 예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0-12절).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에스겔을 이끌어 성전의 북문으로 갑니다. 거기에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 신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13-14절). 담무스 신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여름 더위가 절정일 때 담무스 신이 죽는다고 믿고 애도 했는데, 유다 여인들이 그 의식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안뜰로 가십니다.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태양에게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15-16절). 

주님께서는 이 모든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유다 백성을 심판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십니다(17-18절).

묵상:

당시 대다수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민족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곧 그들이 섬기는 신의 싸움이라고 여겼습니다. 주전 597년에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받아 주권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의 신이 야훼 하나님을 압도한 까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흔 명의 장로들이 이교 예식을 행하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있지 않으시며, 주님께서 이 나라를 버리셨다”(12절)고 말한 이유도, 여인들이 성전 북문에서 담무스 신을 위해 애도하는 예식을 행한 것(14절)도 그런 이유입니다. 스물다섯 명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던 것(16절)도 야훼 하나님보다 태양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하나님에게 징계를 받고 있었는데,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고 혹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패배 했다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참담한 비극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이 고수 했던 민족적 신관을 깨뜨리고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눈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다의 패망과 바빌로니아에서의 포로 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전면적으로 개조해 놓았습니다. 그들의 선민사상과 배타적 민족주의를 깨드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 참된 신은 한 분 뿐이며, 그분은 유대 민족만의 신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비와 긍휼에 한이 없는 분이지만, 때로 당신의 소유로 삼은 백성이라도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민족에게 속했느냐가 아니라 그분에게 속한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율법을 다시 연구하고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임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우리는 모두 고난을 싫어하지만, 고난 속에 담긴 보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이 아니고는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고, 고난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8장: 예루살렘의 타락상”

  1. 주님을 등지고 교회를 떠나는 세대입니다, 교회에 머물고 있다해도 질투하고 편 갈라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 까지도 내용이 없고 겉모양만 그럴듯한 사역을 하고있는 형편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떠나는 결단을 원합니다. 모두가 살길은 십자가의 은혜 밖에는 방법이 없는것을 깨닫고 무릎 끓고 용서를 구하는 대 각성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비록 멸시와 천대를 받더라도 사랑과 구원의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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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상 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배우게 됩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에 유혹되어 주님을 떠나는 어리석음을 교훈삼아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는 주님의 임재에 초점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주님을 직시하며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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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백성을 용광로에서 금 광석을 제련하여 순수한 금을 만드는 것처럼 영적으로 단단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 중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을 가지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겨운 행위를 할 때는 눈을 감으시고 처벌하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시간마다 기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선히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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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에스겔에게 보여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우상숭배와 이교의식들의 환상이 어찌보면 내 마음의 문들에 있는 죄악들이 아닌지 살펴봅니다. 추악하고 더럽고 말도 안되는 죄악들의 문들이 내 안에도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합니다. 추악한 이스라엘의 모습속에서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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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여호와 영이 에스겔을 데려가 내려놓은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주님은 에스겔에게 백성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런 질문을 몇 번 더 하십니다. “이보다 더 못된 짓,” “이보다 더 역겨운 광경” 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에스겔은 성전 뜰에서도 보고, 벽을 파고 나타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기도 하고, 북문의 입구에서도 보고, 성전의 입구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도 봅니다. 에스겔이 보는 악행의 주역들은 장로들, 여자들 또 제사장들입니다. 벽면 가득 우상 그림을 채워 놓기도 했고 이방신을 애도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성전을 등진 채 태양을 향해 절을 하기도 하고 코에 나뭇가지를 대며 우상을 섬기기도 합니다. 코에 나뭇가지를 대는 행동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행동, 지도자와 백성이 다같이 저지르는 죄악이 하찮은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종교적인 퇴폐만 저지른 것이 아니라 온 땅을 폭력으로 채워놓았다고 하십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루살렘 성전은 세상 전체를 담은 축소 모형일 수도 있습니다. 성전에서 벌어진 악행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적인 부패를 뜻하지만 성전 담 밖으로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시는 독물이기도 합니다. 성전에서 공동으로 모여 악을 행할 뿐 아니라 “각각 자기가 섬기는 우상의 방”에서 장로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인간의 의식 속에 은밀히 거하는 어둠의 죄와 또 우리 모두 주범이거나 공범이 되어 계속 저지르는 잘못된 사회악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으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12절)”며 자기들의 알리바이로 삼은 말은 18절에서 하나님이 이제 당신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아끼지도 않으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도 들은 척도 안 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말처럼 되고 맙니다. 역겨운 행위의 끝은 자기파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래 두고 보시는 하나님, 관용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값싼 은혜와 “하찮은” 호의를 베푸는 존재로 떨어뜨렸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천박한 가짜 신으로 만들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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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주님이 저희를 통해 이루시는 모든 업적도 당신의 은혜이고 저희가 감당해야하는 고난도 또한 당신의 은혜입니다. 고난중에도 우리가 공평하시고 인자하신 당신의 성품을 절대 잊지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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